6·25전쟁 정전협정이 체결된 이후 60년 동안 남북관계는 간단없이 냉·온탕을 오가며 진전과 후퇴를 반복했다. 김형기 전 통일부 차관(현 평화재단 평화연구원장)은 그 과정을 ▲남북관계 폐색기(분단∼1969년) ▲남북관계 태동기(1970∼1979년) ▲남북관계 정립기(1980∼1987) ▲화해·협력 모색기(1988∼1997) ▲화해·협력 진입기(1998∼2007) ▲남북관계 조정기(2008년 이후)로 분류했다.
◆체제 경쟁 수단으로 이용된 남북관계
그간 남북관계를 규정했던 획기적 전기로는 1972년 7·4남북공동성명과 1991년 12월 남북기본합의서, 2000년 6·15공동선언, 2007년 10·4남북정상선언 등이 꼽힌다. 남북 간 체제 경쟁이 치열했던 80년대까지는 남북 양측이 남북대화 자체를 내부 정치적으로 활용해 왔다. 남북 간 체제 경쟁과 견제가 극심했던 1972년 만들어진 7·4남북공동성명만 보더라도 남북한 공히 독재체제의 기반을 강화하는 데 악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박정희 정권은 그해 위헌적인 유신체제를 선포(10월17일)하며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반하는 장기집권의 길로 내달렸다. 북한 역시 같은 해 12월 사회주의 헌법 제정을 통해 김일성 당시 내각수상을 ‘국가주석’에 추대하며 사회주의권에서도 유례가 없는 김씨 일가의 세습정권의 토대를 마련했다. 북한에서 ‘수령절대주의’라는 유일지도체제가 확립되는 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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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2년 5월 극비리에 북측 특사 자격으로 서울을 찾은 박성철 북한 제2 부수상(왼쪽)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접견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이 시기 남북관계는 ‘대화’는 있었으나 화해·협력 정신에 기반한 것은 아니었으며, 북한은 대남혁명전략의 연장선상에서 대화 전략을 또 하나의 ‘전쟁’으로 인식했던 측면이 크다. 북한의 경우 남북대화를 체제선전 무대로 활용하거나 남한 정국이 혼란스러운 틈을 타 국내 정세를 어지럽히려는 목적으로 남북대화를 이용한 적도 있다. 1979년 10·26사태와 12·12쿠데타 이후 북한이 남북총리회담을 제의한 것이 그 대표적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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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 6월 김대중 전 대통령(왼쪽)과 김정일 위원장이 제1차 남북정상회담을 갖고 6·15공동선언을 내놓은 뒤 손을 맞잡아 들어올리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체제 경쟁에서 남한이 우위를 점한 탈냉전시대의 남북대화는 ‘명분’이 아닌 ‘실리’ 차원의 접근 양상을 띠게 됐다. 그런 가운데 남북관계는 1993년 1차 북핵 위기 이후 지금까지 북핵과 연동되는 시대를 맞게 된다. 남북관계는 북핵 상황에 따라 오르막과 내리막이 극적으로 교차하는 롤러코스터를 타게 된다.
진보 성향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서면서 남북교류는 양적·질적 차원에서 확장됐다. 북한은 이 시기에 6자회담에 참여하며 비핵화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으나 내부적으로는 핵실험을 강행하고 비밀리에 우라늄탄 개발에 나서는 등 남한과 국제사회를 농락하는 행태를 보였다. 그 반동으로 보수성향의 이명박정부가 출범한 이후 남북관계는 급속히 냉각되기 시작했다. 북한은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 등을 자행하며 사태를 악화시켰다. 이명박정부 시절의 통일부 고위관료는 “앞으로 남북관계는 개선된다 하더라도 2000년 수준보다 더 발전하거나 좋아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북한은 20년 넘게 핵문제를 이슈화함으로써 한반도 문제를 국제문제화하는 동시에 남북관계를 통일 문제보다 평화 문제에 묶어두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도 있다. 북핵 문제를 전략적으로 활용함으로써 핵 문제를 둘러싼 북·미 양자협상, 평화체제 논의를 위한 4자회담(남북한, 미국, 중국), 6자회담(남북한,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이 이어지는 동안 분단의 고착화와 ‘2개의 한국’이라는 ‘과실’을 챙겼다는 것이다. (김형기 전 차관)
북한이 정전협정을 대체할 수단으로 북·미 간 평화협정 체결을 들고 나오기 시작한 것은 1974년의 일이다. 당시 북한의 허담 외교부장은 최고인민회의 제5기 3차회의에서 ‘실권을 가진 당사자들끼리의 문제 해결’을 강조하며 대미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했다. 이전까지 북한은 남북 간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해 왔다. 이때부터 남북한 간 논쟁 중심은 통일방안에서 공존을 전제로 한 분단상태의 관리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박근혜정부 들어 남북관계는 재조정 국면에 진입했다. 박근혜정부는 최근 남북당국회담이 수석대표의 급(級)을 둘러싼 논란 끝에 무산된 사례에서도 보여지듯 남북관계도 국제적 룰과 상식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한·미의 대북 접근법이 충돌했던 노무현·부시행정부 시절과 달리 이명박·박근혜정부는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와 호흡을 맞춤으로써 남한이 남북관계의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는 대외여건이 형성됐다. 향후 남북관계의 미래는 북핵 문제의 전개 양상과 북한 체제의 변화 여부에 좌우될 전망이다.
김민서 기자 spice7@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