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움직임을 보면서 대기업이 청년 실업률을 줄이기 위한 고용확대 방안이라든가 신성장동력에 대한 투자계획을 밝히는 대신 왜 뜬금없이 윤리경영을 들고 나온 것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을 것이다. 윤리경영이 어제오늘 나온 말도 아닌데 말이다.
답은 현장에 있다. 대기업이 윤리경영을 강조하는 것은 올해 유난히 많은 대기업 관련 사고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올봄 전국 곳곳에 산재한 산업단지에서는 창피할 정도로 후진국형 안전사고가 잇따라 발생했다. 자고 나면 새로운 사고소식이 들릴 정도로 빈발했다.
공교롭게도 사고 대부분은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기업,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다는 글로벌 기업에서 터졌다.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공단 인근 주민들은 “불안해서 못살겠다”며 주거지 이전 등을 요구했지만 ‘공염불’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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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연직 전국부장 |
이들 사고는 대기업 공장에서 발생했다는 공통점 말고도 또 하나의 커다란 특징이 있다. 대부분 늑장신고를 하고 사고를 축소 은폐하려 했다는 점이다. 세계 1등기업이라는 삼성전자는 늑장신고의 극치를 보여줬다. 첫번째 불산누출 사고 때 치료를 받던 작업인부가 숨지자 병원 측이 경찰서에 신고하면서 26시간 만에 공개돼 유독가스의 누출을 모르고 있던 공장 인근 주민들을 경악케 했다.
사고처리 과정에서도 해당 기업은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대림산업 측은 사고 책임을 하청업체에 뒤집어씌우려고 증거를 조작한 사실이 검찰 조사에서 드러났다. 이 회사 여수공장에서는 산업안전보건법을 1002건이나 위반한 것으로 조사됐다. 삼성전자 화성공장 또한 이에 뒤지지 않는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2월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한 결과 산업안전보건법을 1934건 위반하는 등 안전보건관리가 허술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기업에 윤리경영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 든다. 오죽했으면 지난달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사장이 불산 사고 책임 문제와 관련된 기자들의 질문에 “돈만 많이 벌면 된다”고 답해 논란을 자초한 뒤 뒤늦게 사과하는 일이 생겼을까.
기업의 지속 성장을 위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돼버린 윤리경영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하지만 요즘 대기업의 윤리경영 실천 결의를 보면 선뜻 박수칠 일만은 아닌 것 같다. 예전 재벌총수들이 사면에 대한 대가로 기부를 발표한 것을 떠올리게 한다.
전가의 보도처럼 여기는 윤리경영을 논할 때면 꼭 등장하는 기업이 있다. 미국의 글로벌기업 엔론이 회계부정사건으로 파산한 것은 새삼스러운 얘기가 아니다. 선진국과 강대국이 엄연히 구분되고 참부자와 졸부가 다르듯, 법을 지키며 윤리경영을 실천하는 기업은 요란스럽게 티를 내지 않아도 국민이 잘 알고 있다. 오늘 잘나간다고 오만했다가는 윤리경영 교과서에 한국판 사례로 올라갈 수 있다. 윤리경영을 논하기에 앞서 준법경영이라도 제대로 실천해 애꿎은 하청업체 직원과 공단 인근 주민들이 불안에 떨지 않도록 했으면 한다.
박연직 전국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