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법령 속에는 난해하거나 뜻이 모호한 문장이 많은데, 때때로 평문 속에 숨어 있는 깊은 뜻을 캐내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고 마치 암호 해독 같은 작업을 벌여야 할 때도 있다. 하물며 판결문, 특히 대법원의 전원합의체 판결문 중에는 고단한 분석과 비교를 필요로 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홍준형 서울대 교수·공법학 |
물론 정부가 손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법제처는 2006년부터 7년간 1000여건의 법령을 대상으로 ‘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 정책을 추진해 괄목할 만한 실적을 올렸다. 최근에는 행정소송개정법안을 손질한 데 이어 ‘전문가만 알 수 있었던 민법, 이제는 국민에게 되돌려 드리겠다’며 민법을 알기 쉽게 만드는 작업에 착수한 바 있다. 법원도 지난 3월 ‘쉬운 판결문 쓰기’를 위한 법원 맞춤법 자료집 전면 개정판을 발간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법이 알기 쉽게 고쳐졌는지, 판결문이 더 이해하기 쉬워졌는지 그리 잘 체감되지 않는다.
2013년 5월 31일 현재 우리나라 국가법령은 헌법, 법률 1292개와 대통령령 1511개를 포함해 총 4301개를 헤아린다. 법률 1292개를 모두 알기 쉽게 정비해 나가려면 무엇보다 장기적 호흡으로 충분한 숙의와 의견수렴, 실무와 학술 양면에서의 검토를 거쳐야 한다.
그러려면 우선 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 사업을 지속적으로 뒷받침해 줄 확고한 법적 근거가 필요하며 이를 체계적으로 추진해 나갈 조직과 예산이 안정적으로 마련돼야 한다. 그동안 법제처가 추진해온 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 사업의 법적 근거는 대통령령인 ‘법제업무운영규정’의 달랑 한 조항이었고, 그나마 법제처장에게 ‘국민이 알기 쉽도록 법령을 정비할 필요가 있는 경우’(제24조 제1항 제3의 2) 법령정비를 할 수 있다는 식으로만 규정돼 있었다. 미국 등 별도의 단행법을 제정하고 알기 쉬운 문서작성과 법령을 위한 조직체계를 갖춰 추진하고 있는 선진국에 비해 한참 뒤떨어져 있다.
미국의 앨 고어 전 부통령은 ‘알기 쉬운 언어는 시민의 권리’라고 말했다. 알기 쉬운 법이 민주주의와 정부 신뢰에 얼마나 중요한 조건인지를 단적으로 표현해 주는 말이다. 우리도 알기 쉬운 법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 더욱 더 노력해야 한다. 미래를 위한 투자다.
홍준형 서울대 교수·공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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