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미군기지 옆에서 술 팔고 몸 팔며 살다 간 어느 여인의 관이 장미꽃으로 가득 덮인다. 비통한 분위기도 잠시, 고인의 친구와 동생들은 관을 둘러싸고 화투판을 벌인다. 누군가의 선창으로 애절한 노래 한 가락이 이어진다.
“여자이기 때문에 말 한마디 못 하고/ 헤아릴 수 없는 설움 혼자 지닌 채/ 고달픈 인생길을 허덕이면서.”
가수 이미자의 ‘여자의 일생’을 열창하는 그녀들 눈에 이슬이 맺힌다.
연극 ‘숙자 이야기’의 한 장면. 기지촌 여성(가운데)이 미군과 사이에 낳은 애가 학교에서 ‘껌둥이’란 놀림을 받았다며 동네 사람들에게 하소연하고 있다. 행복공장 제공 |
‘숙자 이야기’는 짜여진 대본도, 정해진 대사도 없다. 출연진도 전문 배우가 아니라 기지촌에서 삶을 일궈 온 평범한 60∼70대 할머니들이다. 연기를 제대로 배운 적 없는 그들은 무대에서 10대 소녀에서 양공주, 웨이트리스, 포주는 물론 미군 병사까지 모든 역할을 척척 해낸다. 결말을 궁금해할 필요도 없다. 관객이 보기에 결말이 불만스러우면 언제든 바꿀 수 있는 ‘관객참여형’ 공연을 표방한다.
제목의 ‘숙자’는 특정한 인물이 아니고 기지촌에 청춘을 묻은 할머니 전체를 대표하는 이름이다. 일본군위안부 피해 할머니와 마찬가지로 기지촌 할머니도 대부분 70대 이상 고령이라 재공연을 기약할 수 없는 상태다. 연출을 맡은 노지향(52) 행복공장 상임대표는 “우리의 이 작은 연극으로 많은 ‘숙자’ 이모들에게 찾아올 사람이 생기고 찾아갈 곳이 생기면 좋겠다”고 말했다. 무료 공연이지만 예약이 필요하다. (02)2029-1700
김신성 기자 sskim65@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