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연경 작가 |
이렇듯 훌륭한 작품은 결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하긴, 메주로 장을 담그는 일도 충분한 숙성기간이 필요하고, 도자기를 굽는 데도 알맞은 시간이 주어져야 금이 가지 않는데 하물며 모든 이에게 사랑받는 문학작품이 짧은 시간에 어찌 완성될 수 있겠는가. 위대한 작품일수록 작가가 자신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남김없이 쏟아붓는 열정과 고뇌의 긴 시간이 있다.
비단 문학 작품만이 아니다. 세상을 살면서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이 참 많다. 김장 김치가 맛있게 익는 시간부터 시작해서 한 건물이 완성되는 시간, 공연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연습하는 시간, 원하는 대학을 가기 위해 책과 씨름하는 시간. 그러나 속전속결에 익숙해진 우리는 충분히 시간을 주지 않고 빨리빨리 끝내 버리려 하고 여의치 않으면 쉽게 포기하고 만다. 실패라고 생각하기 전에 후회 없을 정도로 오랜 시간 열정을 다해 혼신의 힘을 쏟아부었나 스스로 냉철하게 점검할 필요가 있다. 그게 아니면 다시 시작해야 한다. 위대한 문학작품이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듯이 단숨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랜 시간이 필요한 것은 사물뿐만 아니라 사람의 감정에도 해당된다. ‘사랑하기’와 ‘상처치유’에도 시간이 필요하다. 사랑은 나무와 같다. 묘목은 오랜 시간 알맞은 햇살과 적당한 물과 양분을 주며 잘 돌봐야 큰 나무로 자랄 수 있다. 첫눈에 상대를 알아보는 운명 같은 사랑도 있을 수 있지만 오랜 시간 서로에게 정성을 다해야 깊은 뿌리를 내려 어떤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사랑으로 자리 잡는다. 요즘 사랑은 가스불 위에 올려진 양은냄비처럼 쉽게 바글바글 끓고 쉽게 식는다. 성장의 시간이 생략됐기 때문이다. 상처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살면서 본의 아니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한다. 상처가 너무 쓰리고 아파 빨리 떨쳐내려고 애를 쓴다. 그럴수록 상처는 지독한 채권자처럼 더 달라붙는다. 시간이 필요하다. 상처의 빛깔이 점점 옅어져 어느 날 스르르 사라지는 시간이. 그 시간을 견디며 기다릴 줄 알아야 비로소 상처에서 벗어난다.
‘필요한 만큼 시간을 주는 일’, 그것이야말로 위대한 문학작품처럼 나 자신을 성큼 자라게 한다.
조연경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