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創造)’라 할 때의 ‘비롯할 창(創)’자 속에는 집[倉]이 들어 있다. 감동이로다. 창(創)의 초기 금문 형태는 ‘?’이었다. 무엇을 칼로 가르면 둘로 나뉘는 모습이다. 나중에 이리저리 칼질하는 모습의 ‘정(井)’자를 더하여 ‘창(?)’으로 쓰다가 발음을 중시하여 서서히 지금의 ‘創’으로 쓰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創’에 창조를 위한 공간을 뜻하는 ‘곳집 창(倉)’이 있다. ‘칼 도(?)’는 창조를 위한 도구라 할 수 있다.
창(倉)’은 ‘밥 식(食)+입 구(口)’의 구조이니 ‘입에 들어갈 것을 넣어두는 곳집’을 가리킨다. 그런 뜻에서 창조란 우리에게 먹을 것을 제공한다고 볼 수 있다.
‘집’을 가리키는 글자로는 창(倉) 이외에, 거마(車馬)나 무기를 넣어두는 곳인 ‘곳집 고(庫)’, 나누어 줄 것[줄 부(付)]을 넣어두는 곳인 ‘관청 부(府)’-그런데 빼앗는 일을 많이 한다는 소문이 있다. 쉿! 벼를 가득 넣어두는 곳인 ‘곳집 름(?)’, 노적가리처럼 잠시[잠깐 유(臾)] 쌓아두는 곳인 ‘곳집 유(庾)’ 등이 있다.
그러면 ‘지을 조(造)’는 어떤 의미인가. 창조한 것을 신에게 고(告)하기 위하여 나아가는[庾] 모습이다.
어쩌다 너무 어려운 집들만 늘어놓았나? 집을 가리키는 익숙한 한자들을 찾아보자. 집 가(家), 집 실(室), 집 궁(宮), 집 택(宅), 집 우(宇), 집 주(宙) 등에는 공통으로 원시 움집 모양의 ‘집 면(?)’자가 붙어 있다. 발음이 ‘면’인 것은 집이 비바람이나 한서(寒暑)·짐승·해충 등으로부터 피해를 면(免)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집을 가리키는 글자는 믿음, 창조, 편안함 등의 의미를 담고 있고, 한 폭의 추상화를 연상케 하는 형태상의 특징을 보이기도 한다. |
‘집 실(室)’은 가족 구성원이 이르는[至] 곳이요, ‘집 옥(屋)’도 피곤한 몸[尸]을 이끌고 돌아와[至] 쉬는 곳이다. ‘편안할 안(安)’자는 여자가 갓 쓰고 다니는 모습이 아니라 여자가 일과를 마치고 대청에 앉아 쉬고 있는 모습이다. ‘집 당(堂)’은 신을 숭상[尙]하는 곳[土]으로 당집을 가리킨다.
‘집 궁(宮)’은 건물이 많이 늘어선[呂] 집을, ‘집 택(宅)’은 사람이 의탁(?)하고 사는 집을 나타낸다. 우주(宇宙)라고 할 때의 ‘집 우(宇)’는 우(于)가 장소를 뜻하므로 공간적으로 끝이 없음을, ‘집 주(宙)’는 유(由)가 연유(緣由)나 인연(因緣)을 뜻하므로 시간상으로 끝이 없음을 나타낸다.
이 외에도 ‘집 원(院)’은 담[?]을 두른 완전한[完] 저택을 가리킨다. 법원(法院)·병원(病院)이로다. ‘집 사(舍)’는 남[人]이 여유(餘裕)롭게 머물다가 버리고 떠나는 집을 가리킨다. 객사(客舍)·사랑(舍廊)이로다.
또 있다. ‘집 면(?)’에서 오른쪽 벽을 없애면 한쪽이 열려 있는 ‘집 엄(?)’이 되는데, 이런 집은 엄호를 잘해야 한다. ‘가게 점(店)’은 정한 자리[占]에서 물건을 차려놓고 파는 집이다. 상점(商店)·매점(賣店)·백화점(百貨店)·할인점(割引店)이로다. 관청(官廳)·도청(道廳)이라고 할 때의 ‘관청 청(廳)’은 ‘들을 청(聽)’자가 들어있으니 관에서는 언제나 백성의 소리를 잘 들어야 한다는 뜻이렷다.
여기서 넋두리 하나. 귀가 양쪽에 있는 이유는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려버리라’는 뜻이 아니라, ‘양쪽의 말을 균형 있게 잘 들어야 한다’는 신의 뜻임을 명심할 일이다. 그리고 높은 집일수록 청렴(淸廉)해야 하고 법도(法度)를 지킬 줄도 알아야 한다. ‘청렴할 렴(廉)’자와 ‘법도 도(度)’자의 공통점이 보이는가.
집을 가리키는 여러 한자들은 사람을 외부의 유해한 환경으로부터 막아주는 등의 의미를 담은 형태로 발전했다. |
중국을 달리 일컫는 말에 화하(華夏)가 있다. 여기의 하(夏)는 전설상 중국의 가장 오래된 왕조를 뜻하기도 하지만, 중국 민족을 가리키기도 한다. 하(夏)의 전서를 보면, 깍지 끼고 화려하게 앉아 있는 신인(神人)의 모습을 닮았다. 중국의 단군왕검이라고나 할까. 신인이 여름 제사에 춤을 추었다는 데에서 ‘여름 하(夏)’의 의미가 유래했다고 보기도 하고, 여름에는 덥기 때문에 머리[頁]와 발[?]을 모두 드러낸 모양으로 보기도 한다. 좌우지간 여름이면 빛이 따가워서 머리에 수건을 덮고[一] 더워서 천천히 걸으며[?] 숨을 ‘하하’ 하고 토할 수밖에 없다. 중국 대도시를 여행하다가 보면 빌딩 옆에 ‘∼대하(大廈)’라고 쓰인 간판을 자주 접하게 되는데, 이는 ‘명심보감(明心寶鑑)’에도 나오는 말로서 빌딩이라는 뜻이다.
‘대하천간 야와팔척(大廈千間 夜臥八尺)/ 양전만경 일식이승(良田萬頃 日食二升).’
큰 집이 천 칸이라도 밤에 잘 때는 여덟 자면 만족하고, 좋은 밭이 만 이랑이라도 하루에 두 되만 먹으면 넉넉하니라. 좁고 적어도 남는 삶이 있는가 하면, 넓고 많아도 부족한 삶도 있구나.
권상호 라이브 서예가·수원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