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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스토리] '특공대밀수' '커튼치기'…밀수꾼 수법 날로 교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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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60년대 우산·재봉틀 들여와
80년대 시계 등 고급 사치품 선호
2000년대부터 중국 농산물 기승
항문 등 신체 이용한 방법은 여전
기술 최첨단화… 물 샐 틈 없는 단속
‘심지 박기’, ‘커튼 치기’, ‘신체 활용 밀수’….

밀수 수법이 나날이 진화하고 있다. 선원이나 승무원에게 부탁하는 전통적인 방식에서 컨테이너를 교묘하게 위장하는 등의 최첨단 방식으로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시대적인 변천과 맞물려 밀수품의 종류와 규모도 달라지고 있다. 밀수꾼들은 해방 후 중국으로부터 백주(白酒)와 담배, 비료 등을 밀반입했다. 1950∼1960년대에는 우산·재봉틀·화장품·라디오 등이 밀수입됐다. 미군 군수물자의 불법유출도 만연했다. 1970년대는 금괴와 텔레비전 등 가전제품이 세관을 피해 들어왔다. 1980년대는 시계류와 보석류, 밍크코트 등 고급 사치품이 밀수품목으로 인기를 끌었다. 1990년대에는 컴퓨터기기와 필로폰, 골프채, 양주 등이 주종을 이뤘다. 외화밀반입도 적지 않게 발생했다. 2000년대부터는 중국산 농수산물·짝퉁 물품·비아그라 등의 밀수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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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국제우편물류센터에서 세관원과 탐지견이 우편물에 마약류가 있는지 검사하고 있다. 
인천국제공항=이재문 기자


◆아날로그 시대…‘특공대 밀수’를 아시나요

195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까지 남해안 일대를 무대로 조직적인 해상밀수인, 일명 ‘특공대 밀수’가 판을 쳤다. 10t급 정도의 소형 목선에 탱크에서 뗀 엔진을 설치, 30노트(시속 55.6㎞) 이상의 속도로 달렸다. 세관감시선의 속도는 10노트 정도여서 밀수선을 잡기란 불가능했다. 일본 쓰시마를 거점으로 한 대일 밀무역에는 폭력배와 권력기관이 개입되기도 했다.

1970년대에는 외항선과 ‘활선어선(活鮮漁船)’, 한·일 간을 왕래하는 ‘부관 페리호’ 등이 밀수에 이용됐다. 활선어선은 활어·선어의 선도를 유지해 수출할 수 있도록 수출면장 없이 현지에서 바로 외국으로 출항할 수 있었다. 밀수꾼들은 이 배에 소량의 활어·선어를 싣고 일본에 입항해 다량의 밀수품을 싣고 육지에서 가까운 바다 속에 투하한 뒤 해녀를 동원해 운반했다. 육상밀수는 100여개소의 미군 PX(군부대 매점)와 APO(군사우체국)를 통해 주로 이뤄졌다.

1980년대 밀수 수법은 외항선원에 의한 밀수, 정상적인 무역(수입)을 가장한 밀수, 여행자 밀수 등이 대표적이다. 밀수의 주요인은 높은 세율이나 수입 제한에 따른 상품공급 부족으로 국내외 가격의 현격한 차이와 부유층의 외제선호·사치풍조 때문이었다. 1990년대에는 세계무역기구(WTO)의 출범으로 세계시장 개방과 통관절차 간소화를 악용한 밀수가 판을 쳤다. 컨테이너를 이용한 중국산 참깨 밀수, 한·중 여객선 보따리 상인들의 농산물 밀수가 성행했다.

◆기상천외한 밀수 기술의 진화

2000년대 들어서는 밀수 방법이 규모도 커지고 사업화하는 등 대담해졌다.

감시당국의 눈길을 피할 수 있는 최대의 은닉 수단은 컨테이너다. 컨테이너를 위장하기 위해 기상천외한 방법들이 동원되고 있다. 일명 ‘커튼 치기’는 2000년대 들어 성행한 방법으로 컨테이너 앞쪽에 일반 무역물품을 적재하고 뒤쪽에 밀수품을 숨긴다. 앞쪽의 물품을 모두 내려놓기 전에는 밀수품을 확인할 수 없다.

‘심지 박기’는 일반 물품 사이에 밀수품을 섞어 심지를 박듯이 숨기는 방법이다.

예나 지금이나 밀수에 가장 많이 이용되는 수단은 ‘신체’다. 1933년 5월 초 신의주경찰서 유치장에서 50대 미모의 여인이 항문에서 금괴 3개(567g)를 배출했다. 50년의 세월이 흐른 1983년 11월 초 부산세관에 끌려온 한 선원은 화장실에서 총 1500g의 황금 두 덩어리를 분만(?)했다. 가래떡 모양처럼 둥글게 포장해 콘돔에 싸서 항문에 숨겼다. 이 수법은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다.

◆뛰는 밀수꾼, 나는 세관원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당국의 밀수 대응은 걸음마 수준이었다. 1970년 밀수 전담 조직으로 관세청이 탄생하기 전까지 세관·검찰·경찰·군으로 이뤄진 밀수합동수사반이 활동했다. 밀수는 사회 5대 악의 하나로 분류됐지만 단속은 ‘원시적’ 형태였다. 관리 대상으로 분류된 우범자들이 여행을 다녀오면 짐을 열어 확인하는 정도였다.

밀수 단속 수준이 한 단계 올라선 것은 1974년 대통령 영부인 저격 사건이 계기가 됐다. 저격에 쓰인 권총이 김포공항을 통해 반입됐기 때문이다. 권총을 분해해 라디오 속에 넣어 들여왔는데, 당시 수준으로는 알아낼 수 없었다. 이 사건 이후 안보감시업무가 부각됐다. 입국자의 신변과 휴대품 검사는 정밀검사로 바뀌었고, X-RAY 등 첨단장비가 도입됐다.

서울올림픽이 열린 1988년부터 단속 기술은 최첨단화됐다. 테러단체가 올림픽을 무산시키려 한다는 첩보가 접수돼 비상이 걸렸다. 폭발물 탐지견 10마리가 처음으로 현장에 투입됐고, 출입문 금속탐지기 등 최신 과학장비가 새로 갖춰졌다.

인천국제공항=박찬준·우상규 기자 skyland@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