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월경죄를 두려워하지 않고 조선에 온 것은 오로지 조선 사람들을 사랑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제 본심은 진실로 백성과 같이 현세에서 행복을 얻고 후세에서 복을 부르고자 하는 것일 따름입니다. 남에게나 나라에 해를 끼치는 일은 십계에서 엄금하는 바이므로 절대로 교회 일을 밀고할 수 없습니다.” 1801년 조선에는 천주교인에 대한 탄압으로 피바람이 불고 있었다. 교인들의 희생을 줄이기 위해 스스로 관아를 찾아간 중국인 주문모 신부에게도 군문효수형이 선고되었고, 그해 5월31일에 새남터(현재 서울 용산구 이촌동의 한강 모래밭)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의 나이 49세, 한국에서 신부로서는 최초의 순교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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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란치스코 교황 |
‘시복(諡福)’이란 가톨릭에서 순교자나 신앙에 탁월한 모범을 보인 사람을 사후에 ‘복자(福者)’로 추대하는 것으로, 성인(聖人)의 전 단계에 해당하는 영광스런 칭호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냉전 종식에 끼친 공로 등으로 2011년 시복식을 갖고 복자가 된 바 있다.
한국천주교는 2006년 124인, 지난해 214인 등 총 338인의 순교자를 교황청 시성성에 시복을 청원한 바 있다. 이 가운데 1차 124인은 까다롭다는 교황청 역사위원회의 심의를 통과해 10월 신학위원회의 심의만 남겨놓고 있다.
한국교계에 따르면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내년 초에 124인에 대한 시복이 발표되고 내년 중으로 시복식이 거행될 것이 확실시된다.
복자가 되면 해당 교구나 지역에서 공식적인 신자들의 공경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추가로 절차를 거쳐 성인이 되면 세계 어디서나 공식적 공경을 받으며, 이름을 세례명에 쓸 수 있다. 조선인 최초의 사제 김대건 신부 등 한국인 순교자 103인은 이미 시복식(1925년 79위, 1968년 24위)과 시성식(1984년)을 거쳐 성인의 반열에 올라 전 세계 가톨릭교회의 존경을 받고 있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순교자를 낸 한국 교회로서 영광을 받기에 마땅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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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4인의 새로운 순교 복자를 표현한 서양화가 강선모의 ‘125개의 눈물’(캔버스에 유채 259x162). |
한편, 서울대교구가 조성한 성지순례길은 ▲1코스(말씀의 길)=가톨릭대 성신교정 성당∼종로성당∼좌포도청 터∼이벽의 집 터(수표교)∼명례방∼명동대성당 ▲2코스(생명의 길)=가회동성당∼의금부 터∼전옥서 터∼우포도청 터∼형조 터∼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성지∼중림동약현성당(서소문순교자 전시관)/경기감영 터 ▲3코스(일치의 길)=절두산 순교성지∼노고산 성지∼옛 용산신학교 성당∼당고개 순교성지∼왜고개∼새남터 성지∼한국 순교자 103위 시성 기념표석∼삼성산 등 교구 내 성지와 유적지를 잇는 코스가 있다.
정성수 종교전문기자 tols@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