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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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 “수양 첫 등장신 가장 공들여, 데뷔 20년… 아직 갈 길 멀어”

영화 ‘관상’서 수양대군 역 이정재
왕족이기에 고급스럽고 기품 있어야 했다. 그러면서도 소름이 끼칠 만큼 무서워야 했다. 이 두 가지를 모두 충족시키는 게 바로 배우 이정재(40·사진)의 이미지였다.

올해로 데뷔 20년째를 맞은 이정재가 영화 ‘관상’(감독 한재림)에서 인상적인 연기로 재조명 받고 있다. 초가을 흥행 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이 영화에서 그는 선인지, 악인지 도무지 속을 들여다보기 힘든 수양대군(훗날 세조) 역을 맡아 농익은 연기력을 선보였다. 사실, 수양대군의 첫 등장은 영화가 상영을 시작하고 나서 1시간을 훌쩍 넘기고 나서다. 막 사냥을 끝낸 듯 피가 뚝뚝 떨어지는 들짐승의 사체와 함께 털조끼를 입은 그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난다. 김내경(송강호 분)과 김종서(백윤식 분) 앞으로 걸어 들어오는 위용은 보는 이로 하여금 소름마저 돋게 한다. 

얼굴에는 사냥하다 다쳤는지 흉터가 나 있고 입가에는 내내 약간의 미소를 머금고 있지만 무표정에 가까운 그의 얼굴은 아주 짧은 동안이지만 수양의 캐릭터를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최근 인터뷰에서 이정재는 “수양의 첫 등장 신에 가장 많은 공과 노력을 들였다”면서 “한재림 감독은 수양대군의 분량이 적은데도 강렬하게 관객들의 가슴을 파고들기를 원했다. 얼굴에 난 흉터라든가 털조끼는 모두 그의 상상에 의해 나온 이미지였다”고 설명했다.

“감독님은 제 전작인 ‘하녀’(감독 임상수·2010)를 보고 캐스팅을 결심했대요. 다양하면서도 복잡 미묘한 느낌들이 제게도 있었나 봐요. 배우 개인으로서도 그런 이미지들을 생산하는 과정이 무척 즐거워요.”

이정재는 영화 ‘하녀’ 이후 ‘도둑들’(2012), ‘신세계’(2013) 그리고 관상에 이르기까지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그는 “한국영화가 발전하고 관객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다 보니 제가 참여할 부분도 많아졌다”며 겸손한 태도를 취했다. 시쳇말로 ‘상남자’스러운 그의 매력이 스크린 곳곳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스타 이정재’를 내려놓고 분량과 크기에 관계없이 개성 강한 캐릭터를 연기하니 더욱 관객들의 눈에 띄는 것도 사실이다.

“저 혼자 출연하는 영화가 아닌 한 다른 배우들과의 조화가 우선되어야 해요. 하지만 거기서 안주하지 않고 스스로 갈고닦아야 하죠. 단 한 신 나오더라도 역할을 제대로 소화해야만 작품에 기여할 수 있고, 또 관객들에게 ‘저 여기 있어요. 저 좀 봐주세요’라고 얘기라도 할 수 있지 않겠어요? 앞으로도 좋은 작품, 좋은 배역이라면 주·조연 가리지 않고 열심히 할 계획이에요.”

한국영상자료원은 지난 24일부터 내달 6일까지 서울 상암동 시네마테크 KOFA에서 이정재 데뷔 20주년을 맞아 특별전을 개최하고 있다. 1994년 데뷔해 벌써 나이 사십 줄에 접어들었지만 영원히 ‘젊은 남자’로 기억될 이정재. 앞으로의 행보에도 큰 기대를 걸어본다.

글·사진 현화영·김경호 세계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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