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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셀던 M 스턴 지음/박수민 옮김/모던타임스/1만5000원 |
1962년 10월 미국 워싱턴 백악관의 집무실서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다가오는 핵전쟁의 먹구름을 예상하며 전율했다. “전쟁에 아주, 아주 가까이 갔어.” 케네디는 독백처럼 되뇐다. 부속실장 피 어 샐린저와 에벌린 링컨 같은 백악관 근무자들은 가족 대피에 관한 지침을 받았다. 케네디도 재클린에게 아이들을 데리고 워싱턴을 떠나 있으라고 이미 일러뒀다. 쿠바에 밀반입된 미사일이 핵탑재 중거리탄도탄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미국 조야는 술렁거리고 있었다. 미국은 사실상 소련의 선전포고로 받아들였고 합참본부를 중심한 매파들은 올 것이 왔다며 전쟁 상황으로 몰고가는 중이었다. 2차대전에 이어 한국전쟁으로 몸살을 앓은 미국으로선 또다시 소련과 전쟁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케네디는 몸살을 앓았다. 그것도 핵전쟁을 치러야 한다. 당시 미국의 핵전력은 소련을 압도했다. 하지만 핵전쟁엔 승자도 패자도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케네디였다. 최소한 미국민 중 4분의 1은 몰살당하고 국민 대다수가 핵 피폭자로 남을 것이다. 유럽도 150만명 이상의 사망자가 나온다는 통계치까지 이미 집무실 탁자에 올라 있었다. 절체절명의 상황 속에 백악관 상황실에서 긴급 회의가 열렸다. 일명 ‘엑스콤’이다.
신간 ‘존 F. 케네디의 13일’(원제: The week the world stood still)은 당시 ‘13일’에 얽힌 내용을 고스란히 담았다. 책 내용이 진실할 수밖에 없다. 엑스콤 내용이 그대로 담긴 비밀 녹음테이프를 풀어썼기 때문이다. 테이프의 정체는 케네디 본인과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 법무 장관 이외엔 누구도 모른다. 테이프엔 엑스콤이 처음 열린 10월 16일부터 케네디 대통령이 쿠바 해역 봉쇄를 철회한 11월 20일까지 13일 동안의 회의 내용 43시간 분량이 담겨 있었다.
케네디가 비밀 녹음기를 회의실에 설치한 경위는 이렇다. 별을 단 장군들의 말바꾸기에 환멸을 느꼈기 때문이란다. 피그만 침공 작전을 펼치다 사상자만 남긴 채 실패한 것을 놓고 책임자급 장군들은 책임 회피에만 급급했다. 이 꼴을 본 케네디는 아예 비밀 녹음기를 설치해 녹취하기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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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련이 개발해 쿠바에 밀반입한 대륙간 탄도핵미사일. |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합참의장이 운을 뗐다. “오늘 아침은 각하께서 합참 수뇌부의 말을 직접 들으실 좋은 기회입니다.” 군 최고통수권자가 회의를 주관한다는 사실을 확실히 보여 주기라도 하듯 케네디는 합참의장 발언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합참의장은 계속 말했다. “봉쇄와 정치적인 조치가 오히려 전쟁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 지금 당장 직접적인 군사적 개입을 하는 것 말고는 다른 해법이 없습니다.” 이 순간, 자리에 참석했던 장군들 모두가 대통령의 반응을 기다렸다. 합참의장 르메이의 발언은 군 통수권자에게 조언을 하거나 이의를 제기하는 수준을 뛰어넘어 전쟁을 하자는 요구였다. 르메이는 대통령을 거의 비웃는 듯한 태도로 다시 내뱉는다. “다시 말해, 각하께서는 지금 아주 난처한 상황에 처하셨습니다.” 케네디가 차갑게 되묻는다. “뭐라고 했소?” 르메이가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이 한 말을 되풀이한다. “지금 아주 난처한 상황에 처하셨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어 상·하원의장, 자문위원 등 참석자 거의 모두가 한 방 먹이자는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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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2년 10월 백악관 상황실에서 엑스콤 미팅에 참여 중인 케네디와 당시 맥나마라 국방장관의 모습. |
미국 역사학자인 저자 셀던 M 스턴은 엑스콤의 육성을 담은 테이프를 가장 먼저 듣고 분석한 인물이다. 테이프에 따르면 케네디는 일촉즉발의 사태가 벌어지자 어떻게든 전쟁을 막으려 했다. 각료들이나 의회 지도자들이 소련을 혼내자고 요구했지만 케네디는 거의 혼자 맞서 전쟁을 반대했다. 이 책은 위기 상황을 맞은 국가 지도자가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국내에서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녹취록을 둘러싸고 흑색선전이 난무한다. 마찬가지로 이 책 역시 그간 케네디에 대한 온갖 흑색선전이나 영웅담을 일거에 제거해주는 증거자료가 된다. 케네디는 비록 불안전한 상황 인식과 사고의 틀을 가졌지만, 피스메이커 역할을 했던 위대한 대통령이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