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에는 단군신화와 고대 건국신화가 들어있다. 우리 땅이 몽골인들에게 짓밟히던 시절 백성들에게 자긍심과 민족애를 심어주려는 뜻이 실렸다. 그런데 이 책은 조선시대에는 야사(野史)로 치부돼 주목받지 못하다가 일제 강점기에 육당 최남선이 ‘삼국유사해제’를 펴내면서 재발견됐다. 민족 수난기에 쓰여졌고 600여년 뒤 국권 상실기에 다시 빛을 본 것이다. 최남선은 “일연의 공은 서방의 헤로도투스에도 비할 것”이라고 극찬했다. 지금은 학계에서 주저 없이 우리 고대사 연구의 원천이자 한국 최고의 고전으로 꼽는다.
일연이 ‘삼국유사’를 펴낸 뜻을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된다. 신화는 오랜 세월에 걸쳐 사람들 사이에 공유되면서 전승된 이야기다. 먼 옛날 나라가 열릴 때에 살던 조상들의 사유 형식이 담겨 있다. 현실의 역사가 아닌 꿈의 역사가 신화로 표현된 것이다. 개인의 꿈이 아니라 집단이 함께 꾼 꿈이다. 그래서 인간집단과 거기에 속한 개인의 정신의 원형을 신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학계에서는 말한다. ‘삼국유사’에 실린 신화의 내용은 현세중심적이고 인간중심적이다. 오늘날 한국 사상의 기본적인 특성으로 간주되는 부분이다. 신화를 읽으면 우리 조상들의 정신을 이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오늘날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가 된다. ‘삼국유사’가 한국인의 정신적 지도를 그렸다는 학계 평가를 받는 이유다.
박완규 취재담당 부국장 |
종교학자 정진홍은 “역사가 쓴 시를 담고 있는 책”인 ‘삼국유사’를 항상 손에 닿는 거리에 둔다. “그저 아무데나 펴서 읽다가 책을 덮고 자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이상하게도 그렇게 잠이 들면 꿈자리가 편안하다고 한다. 이런 책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은 큰 복이다. 정민 한양대 교수는 ‘삼국유사’에 대해 “허튼 말이 하나도 없었다. 해석이 어려운 것은 해독의 코드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과연 우리가 잃어버린 게 해독의 코드일까. 아니면 꿈일까.
우리 사회를 돌아보자. 언제부터인가 온갖 형태의 갈등과 마찰, 불협화음이 사회 각 부문을 짓누르고 있다. 다들 남의 이야기에는 귀를 닫고 내 이야기만 한다. 꿈이 사라져서 사회 분위기가 강퍅하고 여유가 없는 게 아닐까. 정치인과 기업인 등 우리 사회 리더들에게 ‘삼국유사’의 책장을 넘기면서 일연이 쓰고자 했던 역사가 무엇이었는지 새겨볼 것을 권한다. 그러면 우리 사회가 당면한 여러 문제들을 풀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역사에 담긴 꿈에서 말이다. 역사는 지금 여기에 사는 우리들의 이야기이고, 꿈이다. 우리를 밝은 미래로 이끌어주는 길이다.
박완규 취재담당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