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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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부채탕감 85만명 역대 최대 '밑빠진 독 물붓기'

부동산대책 후 부채↑… 빚 권장한 꼴
올해 정부는 서민의 빚 부담을 줄여주는 정책을 다양하게 펼쳤다. 정부가 개인 빚을 일부 대신 갚아준 것이다.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캠코(자산관리공사), 신용회복위원회 등 기관이 나섰다.

25일 이들 기관에 따르면 올해 수혜자는 85만명가량으로 역대 최대다. 하우스푸어 등 ‘재정절벽’에 몰린 이들이 국민행복기금, 미소금융, 사전채무조정(프리워크아웃) 등 다양한 경로로 빚을 탕감받았다. 내년엔 수혜자가 최대 93만명에 이를 전망이다.

벼랑 끝 서민의 자활의지를 북돋우려는 정책이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란 분석이다. 가계부채는 다시 급증세이고 서민 빚 부담은 계속 늘고 있다. 지난해 말 963조8000억원이던 가계부채(가계신용)는 지난 9월 말 991조7000억원으로 증가했다. 여기에 사실상 가계부채인 소규모자영업자 빚을 포함하면 실질 가계부채는 이미 1000조원을 훌쩍 넘어선 것으로 추산된다.

정부가 부동산경기를 살리기 위해 빚을 내 집을 사도록 권하는 정책을 편 결과로 분석된다. 지난 1분기에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감소세로 돌아섰던 가계부채는 2분기부터 4·1부동산대책 등 잇단 부양책 영향으로 급증세로 반전했다. 개인 빚을 탕감해주는 한편으로 빚을 내도록 권하는 모순적 정책이 동시에 펼쳐진 셈이다. 하우스푸어를 구제해주면서 하우스푸어를 늘리는 위험을 키운 꼴이다. 내년 미국 양적완화 단계적 축소로 시장금리가 올라가면 가계부채 상환부담은 점증하고 이와 연결된 주택시장도 충격을 받을 가능성이 작지 않다.

관련 통계도 빚 탕감 대상인 서민들의 살림살이가 점점 궁핍해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통계청·금감원·한국은행의 ‘2013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저소득층일수록 빚 부담이 빠른 속도로 가중되고 있다. 지난 3월 기준으로 소득 상위 20%는 1년 새 빚이 소폭 감소한 반면 하위 20%는 빚이 24.6% 늘었다. 빚을 진 가구는 66.9%로 1.8%포인트 늘었고, 원리금 상환액은 18.9% 늘었다. 법원이 파산에 직면한 개인의 채무를 재조정해주는 개인회생은 11월 말 9만6412건으로 이미 사상 최대다. 도덕 불감증, 형평성 논란도 만만찮다. “버티면 된다”는 인식을 확산시키고 성실한 빚상환자와 무주택 서민에겐 박탈감을 준다. 국가가 개인 빚을 대신 갚아주는 데 따른 사회적 손실이자 비용이다.

류순열 선임기자 ryoos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