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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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납치 신고에 경찰복 입고 출동한 ‘아마추어 경찰’

서울 등굣길 아동 납치사건에서 ‘아마추어 경찰’의 적나라한 모습이 다시 드러났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정복을 입고 현장 주변을 돌아다녔다고 한다. 지난해 4월 수원 20대 여성을 납치·살해한 ‘살인마 오원춘’ 사건에서 우왕좌왕하던 경찰의 미숙한 초동대응은 이번에도 반복됐다. 당시 경찰수장이 사퇴하고 112 신고·수사 체계를 개선하겠다고 한 다짐은 도대체 어디 갔는가.

납치된 어린이의 어머니가 밝힌 실상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엊그제 납치 신고 직후 피해자 집에는 경찰서와 파출소 등지에서 걸려온 전화가 빗발쳤다. 경황이 없는 어머니는 똑같은 설명을 반복하느라 곤욕을 치렀다. 경찰 내부의 공조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결과였다. 출동 후 풍경은 더 기가 막힌다. 경찰복을 입은 채 순찰차를 타고 초등학교와 집 주변을 맴돌다 어머니의 항의를 받고서야 사복으로 갈아입었다고 한다. 납치사건이 터졌는데 경찰 존재를 광고하고 다닌 격이다. 그 시간 납치범은 협박한 돈을 받으려고 피해자 집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자칫 경찰 모습이 범인 눈에 띄었더라면 납치된 어린이의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소방서와의 수사 공조도 부실했다. 경찰은 납치 어린이의 위치추적을 119에 요청하라고 어머니에게 주문했으나 119에 요청하면 피해자 휴대전화로 확인 메시지가 자동 전송된다. 납치범이 협박 당시 사용한 전화는 피랍 어린이의 휴대전화였다.

경찰은 “통신수사 영장이 나오려면 보통 1시간 넘게 걸리기 때문에 119 위치추적을 요청했다”고 했다. 안이하기 짝이 없는 답변이다. 휴대전화 명의자에게 확인 문자가 통보되는 119 위치추적 시스템은 이번 같은 납치사건에는 어울리지 않는 제도다. 그렇다면 긴박한 중대 범죄의 경우 예외적으로 사후영장을 허용하도록 제도를 보완했어야 옳다. 수원 사건을 겪고도 여태까지 이런 문제 하나 고치지 않은 무사안일이 놀랍다.

등굣길 납치극이 터진 뒤 아동지킴이 활동 범위를 넓히고 학교 주변에 폐쇄회로(CC)TV 설치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문이 잇따른다. 반인륜적 아동범죄의 재발을 막자면 필요한 과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경찰이 각성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