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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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평, 인적 끊긴 '유령 경제구'

장성택의 ‘야심 사업’… 中 기업들 “돈 떼일라” 걱정
北, 거래기업 張비자금 조사… 국경경비대 경계 삼엄
“황금평요? 지금 아무것도 없습니다. 앞으로 잘될 것이란 기대감만 있을 뿐입니다.”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 신의주와 마주한 북·중 접경 랴오닝(遼寧)성 단둥(丹東)에서 20년 가까이 활동한 윤달생 재중국단둥한국인회 명예회장의 탄식이다.

장성택 전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처형 이후 단둥의 ‘황금평경제구’는 북·중 경제협력의 향방을 가름할 시험대로 떠올랐다. 28일 찾은 황금평은 영하 15도의 추위 탓인지 인적이 드물고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였다. 황금평은 압록강 하구에 있는 섬이다. 작년 8월 장성택과 천더밍(陳德銘) 중국 상무부장은 이곳을 신흥경제지구로 육성하기로 합의했다.

단둥 압록강변 도로를 따라 길게 이어진 철조망 저편 황금평은 곡창지대였다. 황금평 중국 쪽 입구 철문은 굳게 잠겨있었다. 초소 뒤로 ‘황금평경제구’란 글자와 함께 북한군 초병이 눈에 들어왔다. 말을 붙이려는 순간 초병은 “돌아가시라요. 일없습네다”란 말과 함께 초소 안으로 사라졌다.

황금평 출입구 철문과 철조망 안에는 포클레인 등 중장비 몇 대가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 공사 인부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황금평 입구를 나와 1950년 6·25전쟁 당시 미군 폭격으로 철교 절반이 끊긴 압록강철교에 이르렀다. 중국은 이 다리를 ‘압록강단교(斷橋)’라 부른다. 철교 옆으로 북한과 무역거래가 오가는 중조우의교 철로를 따라 신의주행 열차가 지나갔다. 철교 아래 한 상인은 “열차 통행은 여느 때와 다름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국의 대북 교역 최대 거점인 단둥 내 사업가들 사이에서는 장성택 처형 후 사업 타격을 우려하는 기류가 역력했다. 윤 명예회장은 “장성택 처형 3∼4일 후쯤 평양에서 나온 조사원들이 북한과 거래하는 단둥 내 조선족 기업들의 자금 운영 실태를 조사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이를 두고 북한이 장성택 관련 비자금을 조사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돌고 있다. 단둥 내 대북 사업이 재편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이들도 적잖다. 장성택 존재를 믿고 광산 등에 투자한 사업가들이 자금 회수불능 사태를 걱정한다는 것이다. 

굳게 닫힌 철문 28일 북한과 접경인 중국 단둥(丹東)시 신청(新城)구에 맞닿은 ‘황금평경제구’ 출입구 철문이 굳게 닫혀 있다. 철문 넘어 북한군 초소 뒤로 왼쪽 흰색 건축물 상단에 ‘황금평경제구’란 붉은색 글자가 쓰여 있다.
단둥=신동주 특파원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자매지인 환구시보는 단둥발로 북한 경비대가 접경지역의 야간 순찰과 경계를 대폭 강화했다고 보도했다. 전에 없이 야간 순찰 병력을 늘리고 위장 처리된 모든 잠복 초소에 최소한 2명의 병사가 배치됐다. 북한이 접경 통제를 강화하면서 밀무역도 끊긴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 관광사업도 타격이 큰 듯했다. 압록강철교 부근에서 행인들을 향해 “북한 여행 찾습니까”라고 말을 붙이는 중국 여성들의 호객 행위도 자주 눈에 띄었다.

현지 대북 기업인들은 내년 1월8일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생일 특수를 은근히 기대했다. 장성택 처형에 따른 파장을 차단하고 내부 결속을 위해 주민들에 물자를 더 많이 풀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윤 명예회장은 “북한행 물자가 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당장 대북 교역이 활성화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내년 상반기에는 정상화할 것으로 보고 준비하는 사업가들이 많다”고 말했다.

단둥=신동주 특파원 ranger@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