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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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스토리] 대규모 개발 대신 예술을 입다… 달동네의 ‘달콤한 변신’

일자리를 제공했던 제조업의 경쟁력 약화로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기존 거주자들이 떠나면서 쇠락했던 옛도심이 추억과 문화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거듭나면서 외지인들의 방문이 이어지고 있다. 시간이 멈춘 곳에 생기를 불어넣는 도시재생이 추진되면서 슬럼지역이 활력을 되찾고 있다. 관광객이 몰려들고, 주민들의 소득은 더불어 늘어나고 있다.


◆골목 추억과 예술작품을 동시에 볼 수 있어

지난 5일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동 부림시장 앞 창동거리길. 카메라를 든 40대 남성 2명이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독특한 분위기가 좋네요. 오길 잘했어요.”

부림시장이 있는 창동·오동동에 창동예술촌과 예술거리가 조성되면서 젊은이들이 찾는 명소가 됐고, 문을 닫았던 가게도 하나둘 다시 문을 열고 있다. 예술 흔적 골목 초입에 있는 쌀국수 가게 주인은 “예술골목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처음 가게를 열었던 3년 전보다 매출이 30% 정도 올랐다”고 말했다.

창원시는 이 일대 주요 지점 7곳의 시간당 평균 행인수가 2011년 12월 1603명에서 2012년 12월 2749명으로 1년 사이 70% 이상 늘었다고 전했다. 반면 빈 점포수는 2012년 1월 187개에서 2012년 12월 106개, 지난해 7월 68곳으로 급감하고 있다. 도시재생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 것이다. 향수를 자극하는 골목길과 쇼윈도 너머로 구경하는 예술가들의 작품이 어울려 묘한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미술관을 걷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문화예술촌으로 변신한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동·오동동.
이곳은 한때 ‘경남의 명동’으로 불렸던 마산 최대 상권이자 상징이었다. 1980년대 마산이 전국 7대 도시로 최전성기를 누릴 땐 최고의 호황을 누렸다. 1983년 경남도청이 부산에서 창원으로 이전하고, 창원시가 급격하게 성장하면서 마산은 빠르게 쇠퇴했다. 창동과 오동동도 가라앉기 시작했다. 거리는 텅 비고 빈 가게는 늘어갔다. 시민극장 등 5개 극장도 모두 문을 닫았다. 마산 대표 전통시장인 부림시장에서도 상인들이 떠나갔다.

창동과 오동동에 생기를 불어넣는 움직임은 2007년부터 시작됐다. 지역 시민단체와 상인들이 먼저 나섰고, 이듬해엔 도시재생 민관협의체가 꾸려졌다. 창원시는 2012년 5월 사업비 30억원을 들여 ‘창동예술촌’을 열었다. 이 지역의 빈 가게 70곳을 예술인들에게 2년간 개인 작업실로 임대했다. 미술, 사진, 도예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은 이곳에서 작품활동을 한다.

◆6·25전쟁 피란민의 생활모습 그대로

8일 오전 10시쯤 감천문화마을 입구인 부산 서구 남부민동 부산대병원 뒤편 ‘작은박물관’. 100㎡ 규모인 이 조그마한 박물관에는 6·25전쟁 직후 50년대의 옛 생활 모습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당시의 절구통과 요강, 사진기, 재봉틀, 도자기 등 수십점이 전시돼 있다. 비교적 최신 제품인 삐삐도 눈에 띈다. 물동이를 이고 가는 여인의 모습이 담긴 사진 등 손때 묻은 흑백사진도 여러 장 걸려 있다.

작은박물관을 뒤로하고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자 2010년 ‘콘텐츠융합형 관광협력사업’의 일환으로 빈집을 리모델링해 만든 사진갤러리가 나타났다. 집 자체가 작품으로 만들어진 이곳에는 수십년 된 사진 40여점이 눈길을 끌었다. 100여m 가파른 언덕골목길을 계속 오르자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하늘마루에 도착했다. 남쪽 바다쪽으로는 감천항이 한눈에 들어왔고, 서쪽으로는 괴정과 감천동 등 사하구가, 동·북쪽으로는 영도와 부산북항, 멀리 해운대 광안리까지 보였다.

정상 조망을 끝내고 왔던 길을 다시 조금 내려오자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감내카페가 발길을 멈추게 했다. 이곳은 부산지역 마을기업 1호로 사단법인체인 감천문화마을주민협의회가 운영한다. 365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9시간 동안 다양한 종류의 커피와 과일주스, 샌드위치, 현지 생산한 쿠키 등을 판다. 커피값도 1잔에 1500∼2000원으로 매우 저렴하다.

서쪽 감천동으로 방향을 틀면 빈집을 리모델링해 만든 ‘빛의 집’, ‘카툰공방’, ‘희망의 나무’, ‘평화의 집’ 등이 발길을 잡았다. 카툰공방에서는 1만원을 내면 자신의 얼굴 캐리커처를 즉석에서 그려준다. 감천문화마을을 다 도는 데는 2∼3시간 걸린다. 이 문화마을은 6·25전쟁 때 피란민들이 몰려와 계단식 단층 주택을 다닥다닥 짓고 살던 곳을 리모델링해 관광지로 탈바꿈하는 데 성공했다.

◆천장 없는 박물관으로 변한 골목길

대구 중구 근대 문화골목은 1900년대 초쯤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가곡 ‘동무생각’ 가사에 등장하는 청라언덕에서부터 대구 3·1운동길, 계산성당, 이상화 고택, 서상돈 고택, 약령시, 진골목 등으로 이어지는 거리에 있는 오래된 건축물이 깔끔하게 정돈돼 있다. 거리 곳곳 벽에는 자세한 설명을 곁들인 사진자료가 붙어 이곳이 과거 어떤 곳이었는지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대구 근대골목투어에 참가한 관광객들이 일제강점기 국채보상운동을 통해 나라의 주권을 되찾기 위해 노력했던 독립운동가 서상돈 선생(중구 계산동2가)의 고택을 둘러보고 있다.
불과 5년여 전만 하더라도 이곳은 행인의 발길이 뜸한 곳이었다. 인근에 대구 최고 번화가인 동성로가 있지만 중심가를 벗어난 이 거리는 대부분 낡은 기와집 등 오래된 건물들이 늘어서 형성된 일종의 ‘슬럼지역’이었다. 하지만 곳곳에 일제강점기부터 보존된 근대 문화 유산이 남아있는 곳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중구는 쇠퇴한 건물들을 철거하고 재개발, 재건축을 하는 대신 보존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대구 근대골목투어에 참가한 관광객들이 중구 계산동 영남대로에 그려진 벽화를 보고 있다.
중구는 2007년부터 ‘골목길로 떠나는 근대로(路)의 여행’을 기획해 골목마다 스토리를 입힌 뒤 근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5개의 근대골목 투어코스를 만들었다. 거리 자체가 하나의 천장 없는 박물관이 된 셈이다.

이 같은 낡은 구도심 재생은 관광객 유치 효과를 불러왔다. 2008년 300여명에 불과했던 근대골목 관광객은 2009년 3000여명으로 10배로 늘어난 데 이어 2010년 6000명, 2011년 3만5000명, 2012년 6만2000명, 지난해는 약 19만명이 이곳을 다녀갔다. 대구 근대 문화골목은 지난해 한국관광의 별로 선정됐다. 도시재생사업이 새로운 관광명소를 만들어냈다.

부산·마산·대구=전상후·이보람·이정우 기자 boram@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