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애지중지한들 문화재가 멀쩡히 제 모습을 유지되기를 바란다는 자체가 무리일 수 있다. 문화재가 짊어진 수백, 수천년 세월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다. 부서지고 찢어진 채로 발굴되는 게 부지기수고, 박물관에 고이 모셔 두어도 시간의 흐름에 따른 퇴영을 어쩔 수는 없다. 보존처리의 손길이 그래서 중요하다. 예측할 수 있는 한도 안에서 원형을 복원한다. 구멍 나고 갈라진 것은 메워서 더 이상의 훼손을 방지해야 한다. 알고 보면 사기를 당했다 싶을 정도 감쪽같다. 하지만 현대 기술로도 어쩔 수 없어 보관만 해야 하는 사례도 있다.
◆그리스 투구, 한국의 손길을 만나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고대 그리스 청동제 투구는 사연 많은 문화재다. 기원전 6세기경 그리스 전사를 위해 만들어진 투구는 1875년 발굴됐다. 한국과의 인연은 손기정 선수가 베를린 올림픽에서 우승하면서 부상으로 이 투구를 받으면서 시작됐다. ‘물 건너 온’ 문화재로는 드물게 보물(제904호)로까지 지정되었고, 지난해 한국에서 세 번째 보존처리의 손길을 탔으니 인연이 각별하다.
투구 중심의 코가리개와 투구 상단의 접합 부위에 균열이 생긴 게 가장 큰 문제였다. 1994년 보존처리에서 사용한 접착제가 약해졌고, 코가리개의 무게가 지속적으로 접합 부위에 부담을 준 게 원인이었다. 이번 처리 전에 찍은 투구의 측면 사진을 보면 코가리개가 처져 있는 걸 볼 수 있다.
균열 부위에 약물을 주입해 접착제를 약화시키고 코가리개를 분리한 중앙박물관 보존처리팀은 다시 붙이면서 접합강도를 높이기 위한 삼중의 안전장치를 했다. 유리섬유와 접착제를 바르고, 티타늄판을 덧댄 것. 박학수 학예연구사는 “그냥 두면 다른 부분으로 훼손이 확대되고, 강도가 꽤 필요하다고 판단해서 티타늄판을 붙였다”고 설명했다.
◆발달한 보존처리 기술… 손 못 대는 문화재도 존재
‘6인치(약 15㎝) 6피트(약 180㎝)’이라는 법칙이 있다. 6인치 정도의 거리에서 보면 손을 댄 부분을 확인할 수 있도록 보존처리를 하고 6피트 이상의 거리로 떨어지면 아예 분간을 못 하게 한다는 의미다. 복구의 흔적을 남기는 것은 문화재 관리자가 더욱 신경을 쓰도록 하는 등의 효과를 노린 것이다. 하지만 도자기와 같이 감상의 성격이 강한 문화재는 육안으로 식별이 안 될 정도로 말끔하게 작업을 한다.
‘말 탄 사람 토기’(국보 91호)를 보면서 1924년 출토 당시 산산조각난 모습을 상상하기란 어렵다. 1977년 11월부터 3개월의 보존처리를 거친 후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출토 당시에 임시로 접합되긴 했지만, 이즈음 접착제가 흘러나오고 접착면을 받치기 위해 내부에 나무젓가락을 끼워놓은 것이 확인될 정도로 상태가 악화됐다. 보존처리 결정 후 분해한 결과 38조각으로 나뉜 것을 접착제, 발색제 등을 사용해 작업을 벌인 결과 토기는 높이 23.4㎝, 길이 29.4㎝의 본래 품격을 되찾았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