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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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가 술술] “학교서도 아이 영어능력 업그레이드 가능해요”

대전 천동초등교 김은정 교사 ‘수업개선 1등’ 사례보니…
“Today we are going to write sentences about korean culture. Can you tell me any words about ssiruem or wrestling?”(오늘은 한국 문화에 관한 문장쓰기를 배워볼게요. 씨름, 레슬링과 연관된 단어들을 말해볼까요?)

‘fight(싸우다)’, ‘sand(모래)’ ‘strong(힘센)’ ‘technic(기술)’….

지난 5일 서울 용산구의 국립중앙박물관 대강당. 대전 천동초등학교 김은정(36) 교사가 옛날 씨름하는 그림과 영어로 적힌 씨름, 레슬링 단어 카드를 보여주며 질문하자, 이 학교 6학년 20여명은 앞다퉈 영어로 한 마디씩 답했다. 교육부가 주관한 ‘제15회 교실수업 개선 실천사례 연구발표대회’ 초등학교 영어과 부문에서 1등을 차지한 김 교사가 평소 영어 수업을 어떻게 하는지 보여주는 현장이었다.


천동초등교에서 6학년 영어교육을 전담한 김 교사는 직접 고안한 ‘Bridge(브리지) 활동’을 적용해 학생들이 영어에 흥미를 느끼고 자신있게 실생활 영어를 할 수 있도록 가르친 점이 높게 평가 받았다. ‘다리’를 뜻하는 브리지 활동의 기본은 영어 기초가 부족한 학생들에게 게임 등을 이용해 기본적인 어휘와 언어 형식을 가르치고 수업 참여도를 높이는 것이다.

즉 학생들이 재미있게 영어 기초를 다지면서 ‘영어 울렁증’을 극복한 뒤 듣기와 말하기에 익숙해지도록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를 위해 김 교사는 지난해 모든 것을 바꿨다. 그 전까지 자신의 교육방식이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전공은 국어교육인데, 천동초등교로 부임한 뒤 2011년부터 영어를 전담하게 됐다”며 “2년 동안 어떤 방향으로 교육해야 할지 몰라 교과서 내용을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진도를 나가는 데만 급급했었다”고 말했다.

교사 입장에서 ‘당연히 알겠지’ 했던 내용을 학생들이 모를 때는 답답했고, 어쩔 수 없이 듣기평가와 단어 쪽지시험도 많이 치렀다고 한다. 하지만 학생들은 학원에 이어 학교에서도 영어 평가에 시달리자 스트레스가 컸고, 영어 실력도 향상되지 않았다.

김 교사는 “학생들 환경을 먼저 고려해 수업방식을 고민했어야 하는데, 내 자신 위주로 판단하고 교과서에만 얽매여 영어를 가르친 게 문제였다”고 고백했다.

그에 따르면 대전 변두리에 위치한 천동초등교는 저소득 가정 학생이 많고, 주변에 영어학원도 별로 없다. 학부모들이 영어교육에 관심이 많지만 형편상 사교육을 시킬 여력이 없는 가정이 상당수이고, 여력이 있어도 마땅히 보낼 곳이 많지 않다는 얘기다. 이로 인해 학생들은 영어 사용과 노출 기회가 적을 수밖에 없다. 당연히 기초 어휘와 표현도 잘 모르고, 그럴수록 영어를 꺼리게 되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게 된다.

결국 공교육 내에서 제대로 된 영어교육을 해주는 게 최선이었던 것이다. 이후 김 교사는 국내외 영어교육 연수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하고, 교육과정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교과서 재구성과 흥미로운 교수학습법 개발 등을 통해 지금의 영어수업 노하우를 완성했다.

그러자 학생들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카드와 보드 등 각종 게임과 모둠(그룹) 활동을 통한 ‘재미있는 수업’을 지향하면서 학생들이 영어시간을 즐겁게 생각하고 참여도도 확 높아졌다. 

대전 천동초등교 김은정 교사가 지난 5일 서울 용산구 국립박물관 대강당에서 열린 영어수업 사례 발표회에서 영어 단어카드와 사진자료 등을 활용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교육부 제공
‘영어수업 때 학생마다 최소 한 문장은 자신 있게 말하고 쓸 수 있게 한다’는 것을 목표로 삼은 김 교사는 “영어에 위축되고 부끄러워서 한 마디도 못하던 학생들이 언제 그랬느냐 싶게 잘 하든 못 하든 자신있게 영어로 발표하고 친구들과 대화하는 것을 보면 놀랍다”며 “영어교육에 대한 의지와 지원 방안이 잘 마련되면 학교 교육 내에서도 얼마든지 필요한 수준의 영어 의사소통 능력을 갖추게 할 수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학생들이 상급학교로 올라갈수록 영어에 대해 염증을 느끼게 하는 입시용 영어교육의 문제점과 원어민 수준의 영어 구사 능력을 원하는 잘못된 사회적 인식의 개선을 거론했다.

그는 “초등 3∼4학년 때만 해도 영어시간을 즐겁게 받아들이던 학생들이 고학년으로 갈수록 입시에 대비한 문법과 독해에 매달려 영어에 대한 마음 자체를 닫게 된다”며 “학부모들도 발음 등이 원어민처럼 훌륭해야 영어를 잘한다고 생각하는 인식이 자녀들을 더욱 위축되게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강은 기자 kele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