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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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체력 튼튼하다지만…가계부채 시한폭탄, 경제 흔들 최대복병

전문가 “대외지표 양호하지만 금리 인상기 땐 대위기” 경고
한국경제는 정말 펀더멘털(기초체력)이 좋은가. 상식처럼 통용되는 ‘튼튼한 펀더멘털’론(論)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적잖다. 상당수 경제전문가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일반 국민의 시선에도 의구심이 깔려 있다. 1997년 국가부도 사태의 ‘펀더멘털 트라우마’가 집단적 기억으로 남은 탓이다. 외환위기가 코앞인데도 강경식 당시 경제부총리는 “펀더멘털은 튼튼하다”고 큰소리쳤다.

단기 관점에서 펀더멘털이 좋다는 데 이견은 없는 듯하다. 지난해 707억달러를 돌파한 경상수지 흑자, 3500억달러에 육박하는 외환보유액은 튼튼한 펀더멘털의 핵심이다. 외국인투자자의 관점에서 “한국에 투자하면 떼일 염려는 없겠다”는 믿음을 주는 ‘매력적 지표’라는 게 공통된 지적이다. 미국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 충격이 허약한 신흥국을 위기로 내모는 상황에서도 한국이 버틸 수 있는 이유다.

그러나 몇몇 매력적인 지표가 펀더멘털의 전부일 수 없다. 외국 전주(錢主)의 시각이 아니라 중장기적이며 종합적인 관점에서 보면 한국경제의 펀더멘털은 결코 좋다고 할 수 없다는 분석이 학계를 중심으로 나온다. 가계부채, 공공부채, 양극화 등 나쁜 펀더멘털이 즐비하다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1000조원을 넘어선 가계부채는 금리 정상화(상승)와 함께 한국경제의 위기를 촉발할 가장 큰 위험요인으로 지목됐다. 빚이 고소득층에 몰려 있어 큰 위험은 아니라는 정부나 한국은행의 시각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다수의 경제전문가는 금융위기 시 외국인이 주로 보는 대외적 펀더멘털 지표는 좋지만 내부 지표는 상당히 심각하다고 입을 모은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집 팔면 빚 갚을 수 있다는 것에 채권자는 안심하겠지만 집 팔고 나면 어찌 살거냐가 문제”라며 ‘튼튼한 펀더멘털’론의 허를 찔렀다.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는 “외환보유액 등 대외적 펀더멘털은 큰 위안거리이고 덕분에 한국경제가 위기에서 한발 비켜 서 있는 건 맞지만 문제는 가계부채 등 내부 펀더멘털”이라며 “금리 인상 시기가 오면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한국경제 위기는 2∼3년 내 가계부채에서 촉발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고통스럽더라도 진작 디레버리징(부채감축)을 했어야 했다”며 “이젠 가계부채가 너무 커졌기 때문에 금리인상기에 상당한 후폭풍이 올 것”이라고 밝혔다.

신흥국 금융위기 확산 시 가계부채 등 부채 문제가 자본유출의 핑계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같은 맥락이다. 박승 전 한은총재는 “한국이 금융위기에 빠질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신흥국 위기가 올 때 가계부채와 같은 문제로 투자기피나 자금유출의 가능성이 있다”면서 “단기적으로 큰 걱정은 적지만 장기적으로는 큰 걱정이 많다”고 지적했다.

전성인 교수도 “위기의 트리거(방아쇠)는 나라 밖에서 나올 텐데 그에 따른 파문이 파도로 변하는 과정에서 가계부채가 빌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류순열 선임기자 ryoos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