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가난한 백성들 해산물 즐겼다”

수중유물로 본 고려인 생활상
“고려 풍속에 양과 돼지가 있지만 귀인이 아니면 먹지 못한다. 가난한 백성은 해산물을 많이 먹는다.”

송나라 사람 서긍이 ‘고려도경’에서 고려인의 식습관을 관찰하고 적은 내용이다. 지금도 바닷가 근처에 살지 않으면 잘 모르는 ‘거북손’까지 적어놓은 것을 보면 꽤 열심히 살펴봤던 모양이다. 고려 사람들이 해산물을 좋아했다는 것은 물속에서 발굴된 ‘목간(木簡)’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지방에서 당시 서울인 개경 혹은 강화도로 바닷길을 통해 올려보낸 화물들을 기록한 목간에는 다양한 어패류가 등장한다. 문화재청 임경희 학예연구사는 최근 발표한 논문 ‘해양 발굴 문자 자료, 고려시대 연구의 새로운 지평’에서 목간처럼 문자가 적힌 수중 유물을 통해 접하게 되는 고려인들의 일상을 소개했다. 

 
화물 내용을 기록한 목간
목간은 배에 실린 물건을 기록한 화물표로서 화물의 수취인, 발송인, 종류, 수량이 적혀 있다. 먹거리 화물 중에 두드러진 것이 어패류였다. 특히 젓갈류가 많았다. 생선, 게, 생선알 등을 이용한 것으로 운송의 편리성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임 연구사는 “젓갈은 신라시대부터 폐백 품목으로 나타나며, 고려시대에도 많이 먹었다”고 적었다. 청어, 전어, 갈치, 고둥, 피조개, 농게 등 어패류의 뼈나 껍질이 함께 발굴돼 당시 해산물의 인기를 가늠해볼 수 있다. 

조약돌로 만든 장기알
충남 태안군 대섬 인근에서 발굴된 마도 3호선에서는 장기알이 나왔다. 모서리가 둥근 조약돌을 이용해 앞뒤에 차(車), 포(包), 졸(卒), 장(人+將) 등을 적은 게 확인된다. 선원들의 주요 생활공간인 선체 중앙부에서 발견되었는데, 마도 3호선 침몰 시기인 1235∼69년에는 선원들까지 즐길 정도로 장기가 폭넓게 보급됐음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장기알은 글자의 모양과 색을 ‘초(楚)’와 ‘한(漢)’으로 나눈 지금과 달리 같은 글자를 쓰고 ○표시를 해 구분했다. 크기가 모두 같은 것도 눈에 띈다. 신안 해저유물 중에는 현재 일본 것과 거의 비슷한 목제 장기알이 나와 당시 한·중·일 삼국 모두 장기를 즐겼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강구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