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실전과 동떨어진 '문서훈련'…문제 터지면 허둥지둥

매뉴얼과 따로 노는 안전훈련
여객선 세월호 침몰사고를 계기로 위기대응 매뉴얼을 실전에 적용하는 안전훈련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안전훈련이 토론 위주의 보여주기식 훈련에 치중한 결과 이번 사고에서 각 기관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결과를 낳은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소방방재청의 ‘재난대응 안전한국훈련’은 국가 차원의 대표적인 재난대응훈련이다. 매년 5월에 실시되며, 올해로 10년째다.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 등 400여개 기관과 단체가 참여한다.

이 훈련은 재난대응 담당자들이 관련 매뉴얼을 실전처럼 적용하면서 숙달하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현실과 동떨어진 ‘문서훈련’이라고 지적한다. 지난해 실시된 총 497차례의 안전한국훈련 내용을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대부분 토론기반훈련(402차례)이 진행됐고, 현장훈련인 실행기반훈련은 95회에 그쳤다. 훈련에 이어진 평가는 토의식으로만 이뤄졌다.

올해 예정된 684차례 훈련 중에서도 토론기반훈련이 506차례로 실행기반훈련 178차례의 3배에 달한다.

이와 관련해 이재은 충북대 교수(행정학)는 “제대로 된 매뉴얼을 작성해 (실제상황에) 적용을 위한 훈련을 하는 게 중요하지만 현재 안전한국훈련은 문서업무일 뿐”이라며 “시나리오에 따라 각본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실효성이 거의 없다”고 꼬집었다.

한국정책학회가 소방방재청의 의뢰로 지난해 11월 발간한 ‘안전한국훈련 인지도 제고 및 종합발전방안 연구’ 보고서 역시 “실제 재난 발생에 적용 가능한 대응 훈련프로그램이 미흡하다”고 혹평했다. 보고서는 그 이유로 ‘재난대응 전문성 결여와 일부 재난관리책임기관의 형식적·관성적 훈련’, ‘기관장 관심도와 홍보 등에 치우친 평가’, ‘국민 참여훈련 미흡 및 훈련체계 혼선, 보여주기식 현장종합훈련’ 등을 꼽았다. 그러면서 “상시적인 훈련과 민간전문가 등의 참여 확대가 필요하고, 피해 경감 위주의 ‘사후대응’에서 위험요인을 ‘예방·대비’하는 쪽으로 훈련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국민의 안전한국훈련의 인지도가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일반인 1031명을 대상으로 인지도 조사를 실시한 결과 ‘전혀 모른다’(39%)와 ‘이름 정도만 들어봤다’(38%)는 응답이 77%로 대다수를 차지했다.

안전한국훈련의 사후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것도 문제다. 감사원에 따르면 소방방재청은 2012년 4월 안전한국훈련 종료 후 개선사항이 지적된 36개 기관에 훈련결과를 통보하고 개선사항 이행실태를 지난해 제출토록 했다. 하지만 산림청 등 8개 기관을 제외한 28개 기관이 이행내용을 제출하지 않았고, 소방방재청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감사원은 지적했다.

백소용 기자 swinia@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