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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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민간 투입 발목잡은 ‘수난구호법’

해난사고때 해경에 총괄지휘권…민·관·군 투입 방법·절차 빠져
선사에 인양업체 선정도 명시…결국 갈팡질팡 대응, 손질 시급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가장 안타까운 것은 그 누구도 선체 내 승객들에게 퇴선을 지시하거나 명령하지 않은 점이다.

11일 해양 전문가들은 해난사고 발생 시 구조활동의 근거가 되는 수난구호법이 애매모호해 초동 대처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세월호 승객 구조에 근거가 된 수난구호법의 가장 큰 문제는 해경보다 더 우수한 민·관·군의 인적, 물적 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지 못하게 가로막은 점이다. 수난구호법 제5조에는 수난 구호에 관한 사항의 총괄을 위해 해양경찰청에 중앙구조본부를 두도록 하고 있다. 세월호 침몰사고 때 이 규정에 따라 해경의 중앙구조본부가 수난 구호활동 지휘와 통제권을 행사했다. 해경은 사고 발생 10분 만인 지난달 16일 오전 9시 10분 중앙구조본부를 운영했다.

하지만 중앙구조본부는 사고 당시 구조를 위해 도착한 소방방재청 헬기와 민간 어선, 전남도 어업지도선 등을 신속히 투입하지 못했다. 구조 헬기와 인력들은 사고 현장에서 10분 거리의 섬에서 대기하다 돌아가기도 했다. 수난구호법에 민·관·군과 해군의 투입 방법과 절차가 빠져 있었기 때문에 빚어진 일이다. 수난구호법의 허점은 사고 선박 선사가 인양 업체를 선정하도록 명시한 대목에서 드러났다. 청해진해운이 사고 당일 민간구조업체 언딘을 지정하면서 해경은 사고 초기에 잠수를 전문으로 하는 해군의 수중폭파대(UDT)와 해난구조대(SSU)의 투입을 사흘간이나 불허했다. 김현 해양법 전문 변호사는 “인명을 구조하는 수색 작업은 선사의 계약과 관계없이 해경이 독자적으로 운영하는 게 타당하다”고 말했다.

해경은 사고 초기 출동과정에서부터 인력과 장비의 배치, 실종자 수색에 이르기까지 다른 기관과의 협력이나 조정을 하지 못하면서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 중앙구조본부가 민·관·군을 조정하고 통제하는 컨트롤타워의 역할을 해내지 못한 게 드러났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해경 중심의 명령체계에서 조정 기능을 부여하는 중앙구조조정본부로 바꿔야 한다는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윤종휘 한국해양대 교수는 “세월호 같은 대형사고가 나면 해경이 혼자서 독자적으로 지휘권을 행사할 수 없다”며 “초기부터 민·관·군이 참여하고 조정하는 지휘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해경의 요청이 있어야만 해군과 민·관·군이 구조 현장에 투입되는 수난구호법도 손질이 필요하다. 수난구호법 제16조는 해경의 구조본부장이 구조대에 구조를 지시, 요청할 수 있다고 돼 있다. 해경보다 우수한 잠수 장비와 인력을 갖고 있는 해군의 발목을 잡는 대목이다. 해군이 해경의 요청과 관계없이 필요에 따라 잠수인력을 현장에 동원할 수 있는 강제명령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운채 전 SSU구조대장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해경의 종합훈련에 민·관·군이 참여한 적이 없다”며 “해난사고가 나면 민·관·군의 참여가 자연스럽게 이뤄지는데 그동안 유기적인 훈련 부족으로 효과를 극대화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목포=한현묵 기자 hanshim@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