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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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준, '세월호 설화' 불구 민심은 본선경쟁력 선택

경선전 ‘롤러코스트’ 탔던 정몽준
주식 백지신탁문제 정면돌파 전략…‘김황식 朴心 마케팅’ 공략도 주효
6·4 지방선거 서울시장 후보로 확정된 새누리당 정몽준 의원은 경선 내내 롤러코스트를 탔다.

올 초만해도 당의 ‘중진 차출론’에 “불쏘시개가 될 수 없다”며 불출마 의사로 버티다 3월 초순 공식 출마를 선언한 직후부터 무서운 상승세를 탔다. 경쟁자인 김황식 전 국무총리와 박빙 구도를 형성할 것이라던 예측과 달리 각종 여론조사 지지율에서 큰 폭의 격차를 보이며 앞서갔다. 일부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에서 1위에 올라서며 2002년 대선 당시의 ‘정몽준 바람’이 재연되는 듯 보였다.

12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서 김황식, 이혜훈, 정몽준 후보(왼쪽부터)가 정견 발표를 마친 후 손을 맞잡고 있다.
남제현 기자
본선 경쟁자인 새정치민주연합 박원순 시장과의 지지율 경쟁에서도 밀리지 않았다. 당내 친박(친박근혜)계가 물밑에서 후원하는 김 전 총리와의 격차는 더욱 커졌고 대세론을 형성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 모든 게 달라졌다. 정부와 여당에 대한 비난 여론이 들끓는 상황에서 정 의원 막내 아들이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자신의 페이스북에 “국민정서 미개”라는 부적절한 글을 올리면서 위기를 맞았다. 상승세를 타던 지지율은 곤두박질쳤고 박 시장과의 격차도 벌어지기 시작했다.

김 전 총리와 이혜훈 최고위원은 그 틈새를 파고 들었고 야당의 공세도 거세졌다. 경선 막판에는 정 의원 부인 김영명씨마저 선거법 위반 의혹을 받았다. 정 의원은 이때마다 고개를 숙이며 ‘낮은 자세’를 유지했고 “잠든 서울을 깨우겠다. 기회를 달라”고 읍소하며 위기를 넘었다. 김 전 총리의 ‘박심(박근혜 대통령 의중) 마케팅’도 집요하게 공략했다. 경선 초반에는 당의 공천접수기간 연기를 ‘김황식 특혜’라는 논리로 무산시켰다. 김 전 총리의 박 대통령 출마 권유 발언이 나오자 선거법 위반이라며 몰아세웠다. 자신의 아킬레스건인 현대중공업 주식의 백지신탁에 대해서는 “백지신탁은 주식백지신탁심사위원회의 결정을 전적으로 따르겠다. 법과 제도에 저촉되면 매각하겠다”며 정면돌파했다.

정 의원은 기업 최고경영자(CEO) 출신으로 대한축구협회 회장직을 맡으며 대중적 인기를 쌓은 7선 의원이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6남으로 1987년 30대의 나이에 현대중공업 회장이 됐다.

1988년 13대 총선에서 국회에 입성했다. 울산을 지역구로 내리 5선에 성공한 그는 2008년 총선에서 서울 동작을에 출마해 당선됐으며 지난 19대 총선에서 7선을 달성했다.

정 의원은 2002년 대한축구협회장으로서 한·일 월드컵을 성공리에 치러내 대중적 인기를 얻었으며 같은 해 대선에서 ‘국민통합 21’ 후보로 출마했다. 당시 민주당 노무현 후보를 지지, 단일화에 합의했다가 선거 막바지에 지지를 철회했다. 2007년 대선에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에 대한 지지선언을 하며 한나라당에 입당, 무소속 의원으로서의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2009년에는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가 사퇴하면서 당 대표직을 승계했다. 하지만 2010년 6·2 지방선거 패배에 대한 책임론이 일면서 당 대표에서 물러났다. 19대 총선에서 7선에 성공한 정 의원은 지난 대선에서 당내 경선에 나섰다가 경선 룰 문제를 놓고 당시 박근혜 후보와 대립했으며 뜻이 관철되지 않자 결국 경선에 불참했다.

이천종 기자 skyle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