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창욱의 재발견’이라는 평가가 따라붙였다. 지창욱은 최근 종영한 MBC ‘기황후’에서 원나라 황제 타환 역을 맡아 다채로운 감정선을 넘나들었다. 극중 타환은 철없이 순수한 웃음을 짓다가도 분노에 차 섬뜩한 미소를 흘리는 변화무쌍한 캐릭터. 지창욱은 하지원, 주진모 등 쟁쟁한 선배배우에게도 전혀 밀리지 않은 존재감을 발휘하며 우리가 몰랐던 또 다른 그를 선보였다.
“타환은 한 나라의 황태자지만 유배올 만큼 힘없던 사람이었고,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인물이에요. 그런 남자가 승냥을 만나 사랑을 알게 되고 변해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유약했던 타환이 점차 카리스마를 지닌 황제로 변모하는 과정은 지창욱의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주기 충분했다. 그는 “겁많고 유약한 타환의 모습을 겉모습과 달리 ‘진짜 살고싶어하는구나’라는 마음이 전해지길 바랐다”면서도 “멍청한 타환으로만 비춰지지 않을까 걱정됐다”고 당시 고민을 털어놨다.
극 후반부 광기에 휩싸이는 연기도 타환에 몰입한 지창욱의 고민을 엿보게 했다. “흔히 ‘미쳤다’고 하면 광기어린 눈빛 등 그에 뒤따르는 상투적 이미지가 있잖아요. 저는 타환이 왜 그렇게 될수밖에 없었는지,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그토록 하고 싶었던 말이 뭔지 명확하게 표현하고 싶었어요. 단지 ‘미쳤다’가 아니라 미쳐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전달하려고 하니 생각이 많아지더라고요.”
지창욱은 촬영 초반 가장 불편했던 배우로 하지원을 꼽았다. “둘다 낯을 가려 친해지기 힘들었다”며 친해지는 계기는 다름아닌 ‘연기’였다고 전했다.
“첫촬영 때 겨우 꺼낸 첫 마디가 ‘학교 선배님이시다’였어요. 지원 누나가 ‘그래요?’라고 답한 게 대화의 끝이었죠. 걱정이 많이 됐는데 승냥과 티격태격하는 장면을 연기하면서 지원 누나와 가까워졌어요. 촬영 막바지엔 어떤 장난을 쳐도 받아줄 정도로 친해졌죠.”
결과는 성공적이었지만 방송 전 마음 졸여야 했던 시간이 있었다. 드라마가 역사 왜곡 논란으로 시끄러웠고, 캐스팅을 둘러싼 일부 우려의 시선과 마주한 그로서는 부담감으로 어깨가 무거웠다. ‘기황후’ 방송을 앞둔 지창욱의 속내 또한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
“역사왜곡부터 변발까지 초반에 굉장히 많은 논란을 안고 출발했어요. 제작발표회 분위기도 엄숙했는데 첫 질문이 역사왜곡 논란에 관한 질문이었어요. 그때 제 대답은 ‘역사와는 많이 다르다. 공인으로서 역사왜곡 논란을 어떻게 책임질거냐 묻는다면 죄송한 일이고 드릴 말씀이 없다. 다만 픽션이니 즐겁게 봐주시면 좋겠다’였어요. 그 대답이 딱 제 마음이었죠. 역사왜곡 논란이 있었던 건 부정할 수 없어요. 배우로선 방송을 통해 드라마가 나갔다면 이후 평가는 시청자 몫이에요. 마지막까지 역사적인 부분 외 어떻게 캐릭터를 더 긴장감있고 입체적으로 그릴 수 있을까에 더 집중했던 것 같아요.”
“캐스팅에 대한 우려는 굳이 신경쓰지 않으려고 했어요. 그렇다고 신경쓰이지 않는 건 아니지만 남들 눈치 보다가 제 것을 못하기보다 캐릭터를 잘 만들어 보여드린다면 사람들이 분명히 알아줄 거라 생각했죠. 그러면서도 은근히 눈치는 봤던 것 같아요. 그런데 촬영 중 작가님이 전화해 많은 사람이 반대했고, 자신도 그중 한명이었는데 잘해줘 고맙다고 말씀해주시더라고요. 작가, 감독님이 믿고 맡겨주셔서 많은 걸 보여드릴 수 있었어요.”
지창욱은 첫 주연작 ‘웃어라 동해야’를 비롯해 ‘무사 백동수’ ‘다섯손가락’ 등으로 얼굴을 알렸지만 ‘지창욱’이라는 이름보다 ‘동해’ ‘백동수’ 등 캐릭터로 그를 기억해주는 이가 많다. 지창욱은 '기황후’를 통해 ‘지창욱’ 이름 석자를 시청자의 가슴에 단단히 각인시키는 수확도 거뒀다.
“‘웃어라 동해야’가 말도 안되게 잘돼 너무 기분 좋았지만 종영 후에도 계속 ‘동해’로 불리어지더라고요. 처음 겪는 일이라 혼란스러웠고, 내가 내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진지하게 이름을 ‘지동해’로 바꾸면 나를 찾을 수 있을까 생각했을 만큼 이상한 기분이었죠. 빨리 동해 이미지를 벗어야겠다는 조급함도 있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동해에 대한 사람들 기억을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인위적으로 그런 기억을 바꾼다는 것도 말이 안되더라고요. 흘러가는대로 두면서 제 작품과 캐릭터로 기억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지창욱에게 ‘웃어라 동해야’가 첫 주연의 가능성을 알린 터닝포인트였다면 ‘기황후’는 연기열정과 에너지를 맘껏 내뿜게 한 분출구였다. 지창욱은 “‘기황후’는 좋은 사람들과 만나 즐겁게 연기했던 추억으로 기억될 것”이라며 ‘기황후’가 남긴 의미를 되짚었다.
지창욱은 드라마 뿐 아니라 공연에 대한 애정도 남다르다. 그는 “오는 11월부터 초연배우들과 함께 뮤지컬 ‘그날들’ 재공연에 들어간다”며 바지런한 행보를 전했다. ‘그날들’은 지난해 ‘더 뮤지컬 어워즈’에서 지창욱에게 남우신인상을 안긴 작품이다.
다양한 모습으로 대중 앞에 다가서려는 노력은 차기작에서도 이어질 전망이다. 지창욱은 빠른 시일 내 새로운 작품을 만나려는 욕심보다 그만의 색을 입힌 캐릭터로 대중과 소통하고 싶은 마음으로 차기작을 기다리고 있다.
“그간 만난 캐릭터에는 가지각색 맛들이 있었어요. ‘다섯 손가락’ 때는 매일 화내고 물건 때려 부수는 게 일이었는데 그만의 맛도 나름 있더라고요. ‘무사 백동수’는 액션의 새로움을 알게 했고, ‘기황후’에서는 화냈다 울었다 굴곡 심한 연기를 경험해봤어요. 아직 여러 가지 시도가 너무 재미있어요. 캐릭터의 색깔은 정해놓지 않았어요. 어떤 캐릭터든 다양한 시도로 재밌게 만들어보고 싶어요”
정은나리 기자 jenr38@segye.com
사진=김경호 기자 stillcu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