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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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장병 지원보다 안보교육에 치중… 사업 정체성 논란 휩싸인 천안함재단

“국가서 해야 할 일에 왜 돈 쓰나” 비판
성금 용처 결정 공론화 과정 부족 탓
국민 성금으로 만들어진 천안함재단은 최근 ‘대국민 안보의식 고취지원사업’(이하 안보사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사업이 국민이 성금을 모은 뜻에 어긋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있다. 천안함 희생·생존 장병을 돕는 것과 상관없는 안보사업에 왜 돈을 쓰냐는 것이다. 

세계일보 특별기획취재팀이 ‘공익법인 결산서류 등 공시시스템’에서 천안함재단의 손익계산서를 분석한 결과 재단은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3년 동안 목적사업에 총 11억1839만6720원을 사용했고, 이 중 36.6%인 4억904만2944만원을 안보사업에 썼다. 생존장병지원(3억8964만5796원·34.8%), 46용사 추모사업(1억7738만7760원·15.9%)보다 많다. 

2011년에는 1억2237만1564원(22.1%), 2012년에는 9239만7860원(35.5%), 지난해에는 1억9427만3520원(64.1%)을 사용해 해마다 총 사업액 대비 안보사업 사용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은 최근 세월호 사건 성금 모금 과정에서 알려졌다. 일부에서는 “국가에서 해야 할 안보의식 고취를 왜 유가족에게 전달하라고 내놓은 국민 성금으로 하느냐”며 “세월호 성금도 잘못 쓰일 수 있으니 성금을 내지 말자”고 주장했다. 

천안함 침몰(2010년 3월26일) 성금은 모금 당시부터 논란이 있었다. 한국방송(KBS)은 2010년 4월11일 ‘KBS 특별생방송 천안함의 영웅들, 당신을 기억합니다’라는 제목의 모금 방송을 내보냈다. 성금 모금은 저녁 메인뉴스와 아침 뉴스에서도 주요 뉴스로 보도됐다. 

당시 시청자들은 KBS 홈페이지 시청자 게시판을 비판의 글로 도배했다. 이들은 ‘80년대 성금방송 하느냐’, ‘사고 원인도 밝혀지지 않았는데 모금은 이른 것 아니냐’고 이의를 제기했다. 

성금 사용처 결정 과정에서도 진통이 있었다. 성금 모금 방송 등에 힘입어 총 모금액은 395억5000여만원에 달했다. 천안함 46용사와 수색 작업을 하다 숨진 한주호 준위, 사망하거나 실종된 금양 98호 선원 등에게 250여억원을 지급하고 146억여원이 남았다. 모금에 관여한 사회복지공동모금회, KBS, 전국경제인연합회는 해군, 유가족과 함께 9명이 참여하는 특별위원회(이하 특위)를 만들어 남은 성금의 사용 방법을 논의했는데 이 과정에서 갈등이 불거졌다. 

유가족협의회는 재단 설립에 반대했다. 희생자 추모관을 짓고 그래도 돈이 남으면 기부를 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유가족 외의 인사들은 기부자들의 뜻이라며 재단 설립을 주장했다. 10차례가 넘는 회의 끝에 재단 설립을 결정했다. 

특위에서는 재단의 정관을 만들어 제2조에 ‘재단은 천안함46용사의 공훈을 기리고 그 원혼과 넋을 추모하며 호국정신과 희생정신의 선양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했다. 4조에서는 목적사업으로 46용사 추모사업 46용사 유가족 지원사업 생존 장병의 사회 복귀 지원 및 재활사업 호국정신 선양의 홍보, 계승, 보전 및 육성에 관한 사업 목적사업을 달성하기 위한 기타 각종 제반사업을 정해놓았다. 

재단은 안보사업을 3가지로 나눠 진행하고 있다. 초·중·고생과 대학생 등의 단체가 천안함 선체가 있는 경기 평택시의 안보공원 견학을 희망할 경우 차량과 식사를 지원한다. 매년 상·하반기 한 차례씩 총 두 차례에 걸쳐 고등학생을 60명씩 모아 군함을 타고 해상 안보현장을 방문하는 ‘해양안보체험’도 하고 있다. 또 조용근 천안함재단 이사장이 1년에 5,6개 해군·해병 부대에 안보강연을 갈 때 해당 부대에 위로금을 전달하기도 한다. 

재단은 46용사의 명예를 위해 안보사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박래범 천안함재단 사무총장은 “지금도 이스라엘 잠수함이 (천안함을)공격했다는 등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천안함이 북한의 공격에 의해 침몰했다는 사실을 국민에게 알리고, 46용사의 명예가 훼손되지 않도록 북한의 실정과 호전성을 알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유족들도 안보사업에는 동의하고 있다. 이인옥 천안함46용사유족협의회장은 “처음에 재단이 뭔지도 모를 때 가족들 우왕좌왕하다보니 불만도 나오고 (다른) 의견도 나왔던 것”이라며 “재단을 운영해야 돈이 투명하게 쓰일 수 있어서 재단을 운영하게 됐고, 안보사업도 진보·보수 나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안보사업이 논란의 대상이 된 이유는 목적사업 결정 과정에서 사회 공론화 과정이 부족했던 탓이 크다. 정관을 만든 특위에서 수차례 의논했다고는 하지만 재단이 어떤 사업을 할 것인가에 대해 각계 전문가의 의견을 듣거나 공청회를 열지는 않았다. 국민이 낸 성금인데 국민의 뜻을 충분히 묻지 않았던 셈이다. 

박 사무총장은 “정관을 만들 때 전문가나 교수 의견을 많이 들어서 진행했다면 지금 와서 잡음이 있었겠느냐는 아쉬움은 있다”면서도 “당시로서는 특위에서 충분히 논의하는 등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특별기획취재팀 specials@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