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기고] 김정은 심리에 맞춘 대북정책이 필요하다

북한의 행보가 혼란스럽다. 최근 서해에서 우리 함정에 대한 포격도발 하루 만에 인천아시아경기대회에 대표단을 파견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김정은정권은 김정일과는 달리 불확실의 영역이 늘어난 상황이라 강온 전략으로 규정하기엔 무리가 따른다. 과거 김정일의 경우는 ‘벼랑 끝 전술’이나 ‘살라미 전술’을 즐겨 사용했다. 특히 의제를 세분화해 상대를 혼란시키고, 양보할 때까지 몰아붙이는 전술은 그의 전매특허였다. 달리 보면 순탄치는 않았으나 협상 과정에 나름 일관성이 있어 그의 속내를 상당 부분 읽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김정은체제는 의견을 조정하는 시스템이 취약한 듯하다. 시스템이 부실하다 보니 김정은의 정책행태를 가늠하기 어렵게 됐다. 신년사, 국방위 중대발표, 이산가족 상봉 재개로 유화적 제스처를 보이기도 했으나 지금은 도발 수위를 한껏 높이고 있다. 대량의 미사일과 장사정포 발사, 무인기 침투, 그리고 추가적 핵실험을 운운 등은 긴장 조성을 통해 현 상황을 돌파하고 관리의 주도권을 장악하려는 속셈을 담고 있다. 돌아보면 그는 권좌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불안한 마음에 장성택을 일거에 제거했으나 오히려 고립무원의 심리상태에 갇힐 수 있다. 그러기에 북한군의 전력을 과대평가하는 등 오판할 경우 엉뚱한 결심을 할 수도 있다. 예기치 않은 군사적 도발의 위험성이 그만큼 높아진 국면이다. 이에 이제 쌍방이 ‘윈윈’할 수 있는 ‘대북 맞춤형’ 정책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고성윤 한국국방연구원 명예연구위원
북한의 의사결정 시스템이 불완전하다는 점은 뒤집어 생각하면 남북관계에서 새 패러다임이 만들어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의사결정이 보다 확실하고 신속히 이뤄질 수 있어 남북 모두에 도움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 남북관계를 보면 정책적으로 고려해야 할 범위가 관광 문제에서 우발적 충돌에 따른 확전 위기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넓어진 반면에 남북관계의 고리는 보다 간결해졌다. 과거 시스템이 작동하던 때와는 달리 김정은의 마음을 움직이고 변화를 함께 만들어 가는 방향에 정책 초점을 두고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분명하다. 대명제가 북한의 핵 포기고 평화통일인 이상, 이를 위해 보다 실현성 높은 접근 방안이 요구된다. 김정은의 위험성에 철저히 대비하되, 선언적인 정책보다는 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도록 보다 현실적인 정책 마련이 절실해졌다. 우리 정부가 국제무대에서 정상회담을 강조할수록 김정은은 더욱 경직된 대남 인식, 도발적 대남 행태를 유지하는 패턴을 밟고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

따라서 긴장 해소 차원에서 고위급 회담과는 별도의 트랙인 ‘특사외교’를 제안한다. 김정은을 만나 그의 속마음을 확인할 기회를 만들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긴장 국면의 장기화가 자신에게도 불리하다는 부담으로 김정은도 내심 변화를 필요로 할 수밖에 없는 정황이다. 그는 ‘특사교환’ 같은 실리적이며 ‘존엄’의 체면도 살릴 수 있는 돌파구를 기다릴지 모른다. 현 대결적 구도를 대화 모드로 바꿔 우리 정부가 구상하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작동하도록 남북 모두에 필요한 모멘텀을 ‘창조’해야 할 시점이다.

고성윤 한국국방연구원 명예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