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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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가 지키는 철의 왕국 ‘시간여행’

5㎞ ‘가야사 누리길’ 걸으며 역사 탐방
봉황동 유적지 옛 주거시설 그대로 복원
가야는 기원 전후부터 6세기 중반까지 낙동강 유역에 존재했던 연맹체 형태의 왕국이다. 전기 가야연맹의 맹주였던 금관가야의 중심지가 바로 김해다. 가락국은 금관가야의 전신을 일컫는다. 약 500년간 존속했던 가야는 1500여년 전 신라에 의해 멸망하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삼국유사에만 간단히 언급되어 있을 뿐 가야에 대한 후대의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금관가야의 왕릉이 있던 봉황동 유적에는 당시의 가옥과 망루, 배 등을 복원해 놓았다.
그러나 이 일대에서 많은 유적이 출토되며 그 실체가 어느 정도 밝혀졌다. 당시 가야는 김해에서 생산되는 질 좋은 철을 이용해 수준 높은 철기문명을 꽃피운 동북아의 선진국이었다. ‘김해(金海)’라는 지명도 ‘철의 바다’라는 뜻이다. 가야는 이 철기문명을 기반으로 중국, 일본과 활발히 교류한 해상강국이기도 했다.

김해 시내에서 가야 시대 주요 유적은 대부분 해반천이라는 작은 물길의 동쪽, 분산의 남서쪽 아래 평지에 몰려 있다. 가장 북쪽인 수로왕비릉에서 최남단의 봉황동 유적까지는 직선거리로 2㎞ 남짓. 이 일대를 ‘가야의 거리’라고 부르는데, 이곳의 명소를 잇는 ‘가야사(伽倻史) 누리길’이라는 도보길도 꾸며져 있다. 가야사 누리길은 5㎞ 정도로, 천천히 걸으며 역사 탐방을 하기에 적당하다.

가야 역사 탐방은 대개 서기 42년 가락국을 세운 김수로왕의 무덤에서 시작한다. 봉분의 지름이 약 20m, 높이가 6m에 달하는 수로왕릉은 제법 큰 규모다. 왕릉 앞 납릉정 문에는 물고기 두 마리가 마주 보는 문양(쌍어문)이 새겨져 있고, 비석에는 태양문이 새겨져 있다. 이 모두가 허황후의 고향인 인도에서 볼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수로왕릉이 ‘가야사 누리길’에서 가장 매력적인 공간으로 꼽히는 것은 봉분 뒤편의 울창하고 너른 숲 덕택이다. 기이한 형태로 뻗은 소나무·느티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서 그윽한 정취를 만들어내는 이 숲은 김해 시민들의 휴식처로도 애용된다.

고대 인도의 문양이 남아 있는 수로왕릉.
설화에 따르면 수로왕은 구지봉에서 탄강했다. 하늘에서 구지봉으로 6개의 알이 내려왔고, 그중 하나에서 수로왕이 태어났다. 이때 한국 최초의 서사시인 ‘구지가’도 등장한다. 구지봉에는 거북 머리 모양의 바위가 세워져 있고, 조금 아래에는 한석봉이 ‘구지봉석’이라는 글씨를 써넣은 고인돌도 남아 있다.

구지봉 바로 아래에 자리한 김해국립박물관도 빠트릴 수 없는 곳이다. 수많은 김해토기와 함께 철제갑옷, 파형동기 등 가야문화를 상징하는 유물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철제갑옷은 당시 가야가 수준 높은 철기문화를 향유했음을 보여준다. 또 바람개비 모양의 파형동기는 가야가 일본과 활발히 교류했음을 확인시켜 주는 유물이다. 김해에서 발견되기 전에 파형동기는 일본에서만 출토되었기 때문이다. 철의 왕국 가야를 표현하기 위해 철광석을 의미하는 검은색 벽돌을 사용한 김해박물관은 조형적으로 멋진 건물이어서, 외관도 눈여겨보게 된다.

황동 유적을 지키고 있는 가야시대 무사의 동상.
수로왕릉에서 멀지 않은 대성동고분은 파형동기 등 가야 문명의 실체를 규명할 수 있는 획기적인 유물이 출토된 곳이다. 대성동 고분은 봉분형태가 아닌 언덕 모양의 집단 묘로, 1∼5세기 당시 지배층의 것으로 보이는 다양한 형태의 무덤 184기가 한꺼번에 발견됐다. 그러나 6세기 이후 가야의 무덤은 발견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 대성동 고분박물관의 지붕은 가야 투구를 본떠서 만들었다.

해반천 남쪽의 봉황동 유적은 가락국의 옛 왕궁터·지배층 거주지로 알려진 봉황대와 회현동 패총을 합쳐 이르는 말이다. 회현동 패총도 한국 고고학 발굴사에서 한 획을 긋는 유적이다. 이곳에는 중국 신나라 때 화폐인 화천과 탄화미 등이 발견됐다. 당시 가야가 해로를 통해 중국과도 활발히 교류했음을 보여주는 유물이다. 봉황동 유적에는 고상가옥과 망루, 움집 등 가락 시대의 주거시설을 복원해 놓았고, 해반천변에는 해상강국 가야의 모습을 보여주는 포구와 배를 재현해 놓았다.

해반천 건너편으로 지나가는 경전철을 타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경전철에 오르면 봉황동 유적부터 김해박물관까지 가야의 유적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경전철에서 내려다보는 가야 유적은 김해 팔경으로 지정돼 있다.

김해=글·사진 박창억 기자 daniel@segye.com
여행정보(지역번호:055)=서울에서 출발할 경우 영동고속도로, 중부내륙고속도로를 거쳐 남해고속도로로 갈아탄 후 서김해 나들목으로 빠져 나오면 된다. 김해공항에서 분산까지는 15㎞ 정도 떨어져 있다. 숙소로는 ‘김해한옥체험관’(322-4736)을 추천할 만하다. 13개의 객실을 갖추고 있으며 다도시연 등 각종 전통 체험행사도 마련된다. 김해 시내에는 모텔급 숙소가 여럿이다. 김해의 별미로는 불암장어와 진영갈비를 꼽는다. 현지인들은 불암동 장어타운에서는 ‘솟대마을’(333-6919)을, 진영갈비집으로는 ‘제왕갈비’(346-3392)를 추천한다. ‘김해천문대’(337-3785)는 입구에 차를 세워놓고 15분 정도 걸어올라가야 한다. 김해박물관, 수로왕릉 등 명소는 모두 입장료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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