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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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총리·칼럼·학위논문…청문회 3대 쟁점 부상

朴대통령 대선공약과 어긋난 발언
野 “의전·대독총리 의중 비쳐” 공세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11일 고약한 ‘설화’에 휘말리면서 지명 하루 만에 위기에 처했다. KBS가 이날 밤 공개한 과거 동영상에서 문 후보자가 우리 민족을 비하하는 취지로 발언한 것은 이념과 계층을 떠나 국민적 공분을 부를 수 있는 악재다. 안 그래도 보수 성향이 강해 진보진영 비토가 심한 문 후보자로서는 엎친데 덮친 격이다. 야당은 즉각 지명 철회 카드를 빼들고 압박공세에 들어갔다.

◆국민 감정 거스르는 역사관

KBS 동영상에 따르면 문 후보자가 2011년 자신이 장로로 있는 서울 온누리교회의 특강에서 쏟아낸 과거사 관련 발언들은 민족의 자긍심을 깎아내리는 민감한 내용이어서 예비총리로서의 역사관에 대한 심대한 의구심을 들게한다. 그가 일본 식민지배의 당위론과 남북분단의 불가피성을 주장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전파하는 장로 신분의 설교라해도 부적절했다는 지적이다. 총리 후보자라면 더 더욱 그럴 수 밖에 없다.

문 후보자는 다른 참담한 과거사도 건드렸다. 2012년 강연에선 제주 4·3 민주항쟁과 관련해 “제주도 4·3 폭동사태라는게 있어서…”라며 “공산주의자들이 거기서 반란을 일으켰어요”라고 말한 것이다. 또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해 “일본으로부터 기술을 받아와 가지고 경제개발할 수 있었던 것이에요”라며 “지금 우리보다 일본이 점점 사그라지잖아요. 그럼 일본의 지정학이 아주 축복의 지정학으로 하느님께서 만들어 주시는 거란 말이에요”라는 언급까지 했다. 아울러 “조선민족의 상징은 아까 말씀드렸지만 게으른 거야. 게으르고 자립심이부족하고 남한테 신세지는 것 이게 우리 민족의 DNA로 남아있었던 거야”라고주장했다. 해방에 대해서는 “어느 날 갑자기 뜻밖에 갑자기 하나님께서 해방을 주신 거에요. 미국한테 일본이 패배했기 때문에 우리한테 거저 해방을 갖다 준거에요”라고 해석했다.

문 후보자는 해방운동을 하다 친일로 돌아선 윤치호에 대해서도 “이 사람은 끝까지 믿음을 배반하진 않았어요”라며 “비록 친일은 했지만은 나중에, 기독교를 끝까지 가지고서 죽은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문 후보자의 이같은 역사인식은 우리 민족을 비하하는 것일 뿐 아니라 3·1운동과 상해임시정부의 법통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헌법정신에 위배되는 것이어서 총리 자격에 대한 근본적 의문이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반민족적 망언”으로 규정해 박근혜 대통령에게 총리 지명 철회와 함께 대국민 사과까지 촉구했다. 정의당 이정미 대변인도 지명 철회와 사과를 요구했다.

문 후보자는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에서 퇴근하는 길에 취재진으로부터 관련 질문을 받았으나 “여기에서 얘기할 수 없고, 청문회에서 얘기하겠다”고 즉답을 피했다. 파문이 커지자 총리실은 이날 밤 늦게 “강의는 한국사의 숱한 시련들이야말로 우리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기 위한 뜻이었음을 얘기하고자 한 것”이라는 내용의 짧은 해명자료를 냈다.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11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으로 들어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문 후보자는 ‘책임총리제를 어떻게 구현하겠느냐’는 질문에 “책임총리 그런 것은 지금 처음 들어보는 얘기”라고 답했다.
김범준 기자
◆“책임총리 모른다” 발언 논란

문 후보자는 이날 오전 “책임총리는 처음 들어보는 얘기”라고 말한 데 이어 오후에도 “책임총리는 모르겠다”고 확인해 논란을 자초했다. 세월호 참사에서 드러난 정부 난맥상을 털어내고 국가개조의 중대사를 추진하려면 책임총리제가 절실하다는 여론을 외면하는 모습으로 비쳐서다. 책임총리제는 박 대통령이 지난 대선때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한과 책임을 분산하려는 목적에서 내건 공약이기도 하다. 야권은 문 후보자가 기존의 ‘대독·의전 총리’ 역할에 충실하겠다는 의중을 내비친 것이라며 공세에 나섰다. 새정치연합 금태섭 대변인은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고 여론에는 귀를 닫은 채 청와대 해바라기 행보를 하겠다는 것이냐”고 고 비판했다.

논란이 번지자 문 후보자는 오후 보도자료를 내고 발언 취지에 대해 적극 해명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의 명을 받아 내각을 통할하면서 특히 세월호 사건으로 시대적 과제로 떠오른 국가개조, 즉 비정상의 정상화, 안전혁신, 공직개혁 및 인사혁신, 부정부패 척결 등을 중점적으로 추진해 나가고자 한다”는 의지도 밝혔다. 또 “경제는 경제부총리가, 사회문제와 교육은 사회부총리가 일차적으로 책임을 맡도록 돼 있다”며 “총리는 이를 전체 입장에서 최종 조정하고, 나머지 국정 전반에 대해서도 통할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우승·박세준 기자 wsle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