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호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법학 |
법조계의 전관예우를 막기 위해서는 고위직 판검사도 다른 공직자와 마찬가지로 취업제한을 둘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는 헌법상 직업선택의 자유를 해친다는 이유로 취업제한의 예외를 인정해 왔다. 그러나 헌법상 기본권은 그 본질을 침해하지 않는 한 법률에 의해 제한될 수 있으며, 판검사 출신을 다른 공직자 출신과 차별할 합리적 이유를 찾기 어렵다. 취업제한 기간 동안 법률구조공단과 같은 곳에서 힘없는 서민의 소송을 돕거나 후학을 가르침으로써 공직 수행의 기회를 통해 쌓은 능력을 사회에 환원할 수도 있다. 이미 일부 대법관이 은퇴 후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고 후학을 가르치는 아름다운 관행을 만들어 가고 있지 않는가.
언어가 본질을 은폐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떡값’, ‘촌지’와 더불어 ‘전관예우’가 그렇다. 전관예우라는 말로 전관과 현관이 결탁해 저지르는 비리를 교묘하게 정당화한다. 전관예우는 원래 일본 왕실에서 메이지(明治) 시절부터 쓰던 법률용어로 전직 고관에게 하사하는 특전을 뜻한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전직 판검사가 변호사로 개업해 맡은 소송사건에 대해 일정 기간 현직 판검사가 유리한 판결을 내리는 특혜를 가리킨다. 현관이 전관을 ‘예우’하려면 전관이 대리하는 소송 상대방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현관과 전관의 인식체계에서는 예우일지 모르나 재판의 상대방 입장에서는 전·현관이 결탁한 범죄행위다.
퇴직 후 취업제한만으로는 전·현관 결탁 범죄를 근절할 수 없다. 지금까지 이것이 근절되지 않은 이유는 문제 되면 사퇴하는 것으로 끝나거나 가벼운 처벌을 받는 데 그쳤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따라서 이에 대해 엄한 처벌을 예고하는 것이 최선의 예방책이 될 수 있다. 수준 높은 준법성이 요구되는 사법기관의 범죄행위에 대해서는 일반 범죄보다 무겁게 처벌할 필요가 있다.
법률 선진국에서는 우리의 ‘전관예우’를 법왜곡죄로 엄히 다스리고 있다. 예컨대 독일 형법 제339조는 “판사, 판사 이외의 공무원 또는 중재재판관이 법률사건을 주재하거나 결정하면서 법을 왜곡해 일방 당사자를 유리 또는 불리하게 한 때에는 1년 이상 5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덴마크 형법 제146조는 나아가 만약 부당한 판결로 피해자가 경제상 존립을 위협받는 결과가 야기됐다면 3년 이상 16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미국 모범형법안(MPC) 제243.1조도 검사의 부당한 수사나 법관의 부당한 판결과 같은 법왜곡행위를 엄벌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그동안 학계에서 주장된 법왜곡죄의 신설을 진지하게 검토할 때가 아닌가 한다. 앞으로 ‘전관예우’라는 말을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법왜곡죄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대법원장을 정점으로 하는 법원조직의 엄격한 위계구조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선진국에서 시행하는 법관 정년보장제 도입도 검토할 만하다.
정병호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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