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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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게 내 얼굴·신상 인터넷에 ‘둥둥’

입력 : 2014-06-24 19:46:03
수정 : 2014-06-25 01:4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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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기반 페이스북 페이지, 개인정보 노출 무방비
대학생 강모(26)씨는 최근 친구에게서 “네 사진이 인터넷에 올라와 있다”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확인해보니 강씨의 ‘셀카’ 사진이 그의 동의도 없이 페이스북 ‘OO대 훈남훈녀 페이지’에 게재돼 있었다. 이 페이지는 제보자가 관리자에게 제3자의 사진을 전달하면 관리자가 선별해 게시하는 인터넷 사이트다. 강씨의 사진에는 학과, 학번 등이 기재돼 있었고, 외모를 평가하거나 조롱하는 인신공격성 댓글도 수십개가 달려 있었다.

강씨는 “관리자에게 항의하며 삭제를 요청했더니 ‘미처 동의 여부를 확인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얼굴과 신상정보가 노출되고, 모르는 사람들이 얼굴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을 보니 분노가 치밀었다”고 말했다.

24일 대학가에 따르면 ‘대신 전해드립니다’, ‘대나무숲’, ‘훈남훈녀’ 등의 페이스북 페이지가 익명을 기반으로 한 소통 방식으로 학생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이 페이지들은 익명의 제보자가 메시지나 사진을 관리자에게 보내 게시하면 불특정 다수가 볼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유형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이다. 하지만 특정인을 무분별하게 비방하거나 ‘신상털기’ 등 사생활 침해로 이어져 종종 문제가 발생한다.

실제로 지난 4월 서울의 한 사립대의 ‘대나무숲’ 페이지에서는 도서관에서 창밖을 바라보는 여학생들의 뒷모습을 몰래 촬영한 사진이 올라와 논란이 일었다. 이 사진은 다른 사이트로 확산됐고 해당 여학생들은 성희롱의 대상이 됐다. 해당 페이지의 관리자는 사과하며 글을 삭제했지만 이미 사진은 인터넷에 널리 퍼진 상태였다.

이들 사이트는 사진을 올릴 경우 해당 인물의 동의를 얻도록 하고 있지만, 실제 동의가 이뤄졌는지에 대한 확인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특정인의 신상정보를 묻거나 기재하는 내용의 댓글이 여과 없이 달리고 있다.

중·고등학생들이 만든 페이스북 페이지의 경우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일부 청소년들은 특정 학생이나 교사를 향해 욕설을 쓰거나 사진을 올려 모욕하는 등 페이스북 페이지를 ‘사이버불링(따돌림)’의 장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익명 기반의 사이트는 사생활을 침해하고 관련 인물이 사이버 폭력의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정보원의 ‘2013년 사이버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성인 33%가 사이버 공간에서 명예훼손이나 언어폭력 등 사이버폭력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폭력 유형으로는 ‘신상정보 유출’이 18.4%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고, ‘사이버 언어폭력’이 18%로 뒤를 이었다.

전북대 설동훈 교수(사회학)는 “오프라인에서 심부름센터, 왕따 등의 형태로 벌어지고 있는 사회 문제가 온라인에서도 똑같이 재생산되고 있는 것”이라며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에서 상대방을 음해하거나 신상정보를 무단 공개하는 행위가 더 큰 사회 문제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글의 목적과 상관없이 피해자가 발생할 경우 관리자나 제보자가 법적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점을 반드시 명시하는 등 보다 신중한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권이선 기자 2su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