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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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종택의新온고지신] 오곡번식(五穀蕃植)

쌀은 단순히 쌀이 아니다. 인간의 생명이다. 혼이다. 특히 쌀은 1만여년의 역사를 이어오면서 동양인 삶, 바로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쌀을 주식(主食)으로 삼았기에 철 따라 비와 바람이 적당한 우순풍조(雨順風調)를 빌었고, 농법을 개량해 연년세세 후손에게 물려주었다. 배불리 먹고 등 따뜻함이 국태민안의 큰 소망이었던 것이다.

‘회남자’에 “옛날 신농씨가 천하를 다스릴 때 … 단비가 때에 맞게 내려 오곡이 풍성하게 자라났다. 봄에는 싹을 틔우고 여름에는 성장해 가을에는 거둬들이고 겨울에는 저장했다(昔者 神農之治天下也 … 甘雨時降 五穀蕃植 春生夏長 秋收冬藏)”는 내용이 잘 보여주고 있다.

이렇듯 농사는 자연조건과 인간의 노력이 합해질 때 소기의 수확을 얻을 수 있다. 한 세대 전만 해도 서민들이 쉽게 쌀밥을 대하기 어려웠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나라는 남아도는 쌀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 게다가 요즘 나라 밖에서는 쌀 시장의 빗장을 풀지 않으면 가만있지 않겠다는 으름장이 어느 때보다 거세다. 정부는 조기 개방함으로써 올해 국내 소비량의 9%를 넘어서는 수준인 약 40만8700t까지 늘어나 있는 최소시장 접근물량(MMA), 곧 의무수입물량을 동결해 차후 증가분을 막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농민단체는 반대하고 있다. 언제 국제 곡물이 요동을 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쌀 시장 개방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의무수입물량은 한 번 결정되면 도중에 시장을 열어도 계속 사줘야 한다. 일본은 1999년, 대만은 2003년 시장 개방 카드를 던졌다. 두 나라는 MMA가 국내 소비량의 8%에 도달하자 시장 문을 열었다. 고율 관세로 자국 쌀을 보호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개별 농가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세심한 전방위 대책을 강구해야겠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한국 농업의 중장기 성장전략을 새롭게 짜야 할 필요가 있다. 물론 최악상황인 식량주권 확보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상군서(商君書)’는 일러주고 있잖은가. “사람의 본성은 굶주리면 먹을 것을 찾는다(民之性 饑而求食)”고!

황종택 녹명문화연구소장

五穀蕃植 : ‘오곡이 풍성하게 자라난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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