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그렇듯, 자연은 빠르게 순환하며, 우리에게 어느새 계절이 바뀌고 있음을 실감하게 한다. 세월은 유수와 같다던가, 온통 새롭게 피어나는 꽃 소식에 들떠 있던 것이 불과 얼마 전이었는데, 주변은 싱그러운 초록으로 가득하다. 우리는 빠르게 변하는 계절에 적응하느라, 마음 설레면서 가슴과 카메라에 담아두었던 봄꽃의 기억을 잠시 잊고 있다. 하긴 잠시 잊어도 좋은 기억이리라.
우성주 한국과학기술원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문화인류학 |
원자폭탄 투하의 역사적 트라우마를 그려낸 영화 ‘히로시마 내 사랑’에는 “나는 치유할 수 없는 기억을 갖기를 열망했다”는 구절이 나온다. 원인이 무엇이 되었든, 사건이 발생하고, 피해자가 존재한다면, 비록 그 기억이 아픔이며, 무거움일지라도, 결코 쉽게 잊어서는 안 될 충분한 이유를 찾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일본의 태평양 전쟁 당시 수많은 조선 여성들이 ‘위안부’로 강요되었으며, 그녀들이 떠올리기조차 무서운 고통과 상처를 안고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실체’가 분명 존재한다면,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역사적 흔적을 ‘현재성’으로 짊어지고 살아가야 한다. 이쯤이면, 대충 정리되어도 좋은 것은 아닐까 하는 방관자적 시선이나 무관심은 가해자의 역사의식보다 더욱 두려운 대상이다. 역사적 폭력의 실체에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존재한다. 하지만, 가해자는 부담감 때문에 사건을 잊고 싶어한다. 피해자 역시 과거의 고통을 돌이켜야 하는 힘겨움 때문에 사건을 망각하는 데에 동의하는 경향을 보인다.
아픈 상처를 들쑤시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도 겨우 아물어 가는 듯 보이는 나의 상처를 들쑤시기란 대단한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 위안부 강제 모집과 운영에 대한 진상과 가해자의 진심 어린 사과를 요구하는 집회에 참여하는 우리의 어머니들은 ‘용감한 외출’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오월 어머니회’ 어머니들 역시, 죽임을 당한 자식들의 보상이나 기념비의 제작이 아니라, 진상 파악과 가해자의 진심 어린 사과를 요구한다. 2차 대전 당시 희생되었던 유대인들의 죽음에 대한 보상과 기념비 제작이 가해자 처벌과 사과보다 중요하지 않았던 이유는 역사적 트라우마는 망각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기억되어야 할 현재적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화려했던 봄꽃처럼 꽃다웠던 아름다운 시절을 억울하고 기가 막히게 살아왔던 우리의 어머니들에게 우리도 당신들처럼 역사의 기억을 결코 잊지 않겠다는 선물을 준비해야 하겠다. 내년이면 또 찾아올 봄꽃에 대한 설레었던 기억을 잊을 수는 있어도, 당신들의 용감하고 올곧은 외출이 결코 잊혀지지 않을 것이라고, 한 분 한 분께 마음을 담아 전하고 싶다.
우성주 한국과학기술원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문화인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