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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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최초 국산차 역사 왜곡 안돼” 美 한인 여성 현대차에 시정 요구

한국차 1호 ‘시발(始發)자동차’ 개발 최순성 회장 차녀 최윤희씨
“한국 최초의 국산차는 포니가 아닙니다!”

미주 한인 여성이 현대자동차그룹 정몽구 회장에게 역사 바로잡기를 요청하는 서한을 띄운 사실이 10일 알려져 화제가 되고 있다.

뉴욕한인학부모협회 최윤희 회장은 최근 정몽구 회장에게 이메일과 편지를 통해 “울산 현대중공업 전시실과 울산 박물관에서 현대의 포니가 국산 최초의 자동차라거나, 국내 최초 고유 모델 자동차라고 전시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 아니며 한국의 자동차 역사를 왜곡하는 것이므로 시정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밝혔다.

최 회장은 1955년 한국 최초로 생산된 시발(始發) 자동차를 개발한 최순성 회장의 차녀이다. 최윤희 회장은 “삼성교통박물관에는 현재 시발자동차 실물이 자세한 설명과 함께 전시되는 등 시발자동차가 한국 최초의 자동차라는 사실은 무수히 많은 자료들이 뒷받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시발 자동차의 최순성 회장은 전쟁 직후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뛰어난 창의력과 기술로 한국 최초의 자동차를 생산하였고, 대한민국 정부 주최 산업박람회에서 대통령상도 수상하였다”고 소개했다.

최 회장은 “최초의 국산 자동차에 관한 정확한 교육은 오늘의 한국의 자동차산업이 있도록 든든한 초석을 다지신 분에 대한 예우이며 마땅히 존중해야 할 우리의 자랑스런 자동차 공업의 역사”라면서 “현대자동차는 부정확한 사실과 기록을 즉시 시정하여 현재와 다음 세대들에게 정확한 자동차 생산 역사를 교육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윤희 회장이 이 같은 서한을 띄우게 된 것은 최근 딸이 “사람들이 포니가 한국 최초의 자동차라고 하는데 외할아버지가 한국 최초의 자동차를 만드신 게 거짓말이냐?”고 물은게 계기가 되었다.

최 회장은 “지난 2009년 한국의 단체장들과 울산 현대박물관을 방문했을 때 포니가 한국 최초의 자동차라고 설명이 된 것을 보고 기가 막혔던 경험이 있다. 그때 다른 분들이 함께 있어서 문제 제기를 안했지만 딸아이까지 믿지 못하는 것을 보고 자라나는 세대를 위해 정확한 사실을 알려야겠다고 마음 먹게 됐다”고 밝혔다.

한국에서 최초로 등장한 자동차는 1903년 고종황제의 즉위 40주년을 기념해 의전용으로 들어온 ‘포드 A형 리무진’이다. 2인승이었던 포드는 소음이 심해 황제의 체통에 맞지 않는다고 이용하지 않았고 궁궐의 구경거리로 전락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인이 만든 최초의 자동차는 아이로니컬하게도 한국전쟁의 폐허 속에 있던 1955년 8월 최무성, 혜성, 순성 3형제의 국제차량주식회사가 개발한 시발자동차다. ‘시발(始發)’은 자동차 생산의 시작이라는 의미로 미군으로부터 불하 받은 지프 엔진과 변속기에 드럼통을 두들겨 펴서 만든 차체를 조립한 지프형 6인승이었다.

주요 부품을 미군 차량에서 가져왔지만 실린더 헤드 등 엔진 부품을 한국 기술자가 공작기계로 깎아 만드는 등 국산화율이 50%가 넘어 국산차의 원조로 평가받고 있다. 그해 10월 광복 10주년 기념 산업박람회에서 최우수 상품과 대통령상을 차지했다.

당시 세련된 차체와 최고 시속 80㎞인 시발차 인기는 폭발적이어서 1년만에 가격이 4배나 치솟을 정도였다. 1956년에는 9인승 ‘시발 세단’도 출시됐고 전국에 시발택시가 누비는 등 1963년 5월까지 약 3000대 이상이 생산됐다.

그러나 5·16 군사쿠데타 이후 정부보조금이 끊기고 일본차 수입 허용과 함께 몰락의 길을 걷게 됐다. 닛산의 블루버드가 ‘새나라 자동차’라는 이름으로 수입되는 등 정부가 소형차 판매권을 제한하면서 시발차는 큰 타격을 입었다. 결국 시발차는 단종됐고 대형차로 활로를 찾으려 했던 국제차량주식회사도 1964년 문을 닫게 되었다.

최윤희 회장은 “경영을 잘못한 게 아니라 정치적 이유로 회사가 망했다. 남부러울 것 없이 살던 어느날 갑자기 집달리가 찾아와 모든 세간을 들고 나가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말했다.

최윤희 회장은 “생전에 아버지로부터 현대 창업자 정주영 회장도 시발자동차에 관심을 갖고 한 대 불하받기 위해 집에 찾아와 종일 기다린 적도 있었다고 들었다”고 회상했다.

시발자동차 이후 신진자동차가 블루버드와 코로나, 크라운, 코티나 등을 생산했지만 이는 외국 모델을 국내에서 조립한 것이었다. 한국 고유의 모델은 1976년 현대차가 포니1을 생산하면서 시작된 것으로 평가된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한국 최초의 자동차는 시발자동차이고 한국 최초의 고유모델은 포니1이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최윤희 회장은 “한국 최초의 자동차가 바로 고유모델 1호가 아닌가. 6인승 지프인 시발자동차는 국산화율이 50%가 넘고 차체도 독창적이다. 또한 1956년 생산된 9인승 자동차는 한국 최초의 세단으로 미국의 모토잡지 표지에 등장한 고유 모델 2호다”라고 반박했다.

최 회장은 “현대가 포니를 생산해 오늘날 세계적인 자동차회사로 성장한 것에 한국인의 한사람으로서 늘 자랑스럽게 생각해 왔다”면서 “현대의 성공은 한국전쟁의 폐허 속에서 최초의 자동차를 개발한 불굴의 의지를 지닌 선배들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자동차 역사를 존중해주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