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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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구 회장 경영 스타일 변했나, 한전 부지 10조 낙찰 이유는?

현대자동차그룹이 축구장 33개 규모에 감정가 3조3000억원인 서울 삼성동 한국전력부지를 낙찰 받았다고 18일 밝혔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현대모비스 컨소시엄이 제시한 금액은 10조5500억원. 감정가의 3배가 넘고 작년 말 공시지가 1조4837억원의 7배가 넘는 가격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현대차그룹 제2의 도약을 상징하는, 차원이 다른 공간으로 만들 것”이라며 “100년 앞을 내다 본 글로벌 컨트롤타워로 그룹 미래의 상징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낙찰가가 과도하게 높은 것이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지난 10년간 강남 지역 부동산 가격 상승률은 연평균 9% 이상”이라며 “향후 10~20년 후를 감안할 때 미래가치는 충분하다”고 밝혔다.

이어 “부지 매입비용을 제외한 건립비와 제반비용은 30여개 입주 예정 계열사가 8년간 순차 분산 투자할 예정이라 각 사별 부담은 크지 않다”고 덧붙였다.

▶ 서울시가 국제업무와 복합 문화공간으로 개발하려는 삼성동 코엑스에서 잠실운동장까지의 부지 조감도. 현대차그룹이 낙찰받은 한국전력 부지가 중앙에 위치했다. /그래픽=서울시

현대차그룹의 통근 낙찰가 제시에 관련 업계에서는 의외의 투자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경쟁 입찰자로 나섰던 삼성의 입찰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현대차그룹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금액을 제시했던 것으로 추측하고있다. 때문에 업계에서는 현대차의 이번 결정에 무엇인가 의미가 있을 것으로 보고 제각각 해석에 나서고 있다.

일각에서는 현대차그룹의 의사결정 스타일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분석도 내놨다.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과거 현대건설 인수때만해도 불과 1000~2000억원을 두고 인수에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를 고민하던 현대차그룹이 이번에는 경쟁사보다 무려 5조원이나 높은 금액을 제시했다”며 “1조원 정도 투자해야하는 공장 건설도 망설이는 현대자동차가 부지 매입에 5조원이나 통 크게 제시했다는 것은 의사결정 스타일이 크게 변했다는 반증”이라고 말했다.

높은 입찰가로 인해 현대차가 삼성동 부지를 일시적으로 포기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또 다른 증권가 관계자는 “단순히 생각해도 너무 큰 비용을 부지매입에 들였다”며 “입찰가의 10%에 이르는 보증금 1조550억원을 포기하더라도 현대차가 이번 입찰을 유찰시킬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또, “(이번 입찰은)경쟁 입찰자였던 삼성에게는 현대차그룹이 이 땅에 큰 애착을 가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편, 삼성의 입찰 규모를 살펴본 기회일 수 있다. 입찰 보증금 약 1조원을 포기하더라도 재입찰이 이뤄지도록 해서 5조~6조원에 낙찰 받는다면 그래도 지금보다는 3조원 가량을 절약할 수 있을 것이며 상식적으로 추론 가능한 일”이라고 전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의 주가는 이날 오전 낙찰 소식이 전해지자 일제히 하락세를 달렸다. 현대차는 이날 9.17% 하락한 19만8000원에 장을 마쳤고 기아자동차 역시 7.8% 하락한 5만4400원을 기록했다. 컨소시엄에 참여한 현대모비스 역시 7.89% 하락하며 25만7000원을 기록해 큰 폭의 하락을 기록했다.

이에 대해 증권가에서는 하락폭이 예상보다 크다는 분위기다. 증권가 관계자는 “현대차 컨소시엄 3개 회사의 시가 총액이 약 100조원에 이르는데 세 회사가 5조원에 낙찰 받을 수 있던 물건을 10조원에 받았으니 5조원을 손실 봤다고 감안할 경우 단순 계산으로 주가는 5% 정도 빠져야하지만 예상보다 큰 폭의 하락을 기록했다”고 말했다.

이어 “3개 회사의 주가가 7%~9% 가까이 하락한 이유는 5조원에 낙찰 받을 수 있는 물건을 두 배나 더 주고 낙찰 받은 경영방식에 대한 결과”라며 “회사의 경영 신뢰성에 대해 의문을 갖는 투자자의 의사가 반영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대자동차그룹이 삼성동 한전부지를 예상보다 높은 가격에 낙찰받자 관련 업계에는 음모론까지 등장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대차가 10조5500억원이나 쓴 것과 관련해 한국전력이 2017년까지 갚아야 할 부채가 10조9000억원으로 비슷하게 맞아 떨어진다”며 의혹을 제기했고 또 다른 관계자는 “10조5500억원이면 현대차가 원하는 프리미엄 브랜드 도약을 위해 해외의 유명 자동차 회사를 인수해도 충분한 액수”라며 “심지어 이건희 회장의 삼성전자 지분을 모두 살 수 있는 금액인데 이번 낙찰가 제시는 터무니없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반면, 현대차그룹의 투자를 단순하게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한 금액이라는 의견도 있다. 한 투자분석가는 “현대자동차그룹은 최근 연간 10조원 이상의 순이익을 올리고 있다”며 “아주 단순하게 풀이하자면 연봉 5000만원의 봉급자가 5000만원짜리 땅을 산 것과 비슷하다”고 해석했다. 

한편, 현대차그룹이 낙찰 받은 한국전력 부지는 서울시가 올 4월 발표한 국제업무와 문화 공간을 위한 복합 지구에 속해 향후 예상을 초월한 개발 수익도 노릴 수 있다는 해석도 있다.

서울시가 발표한 계획에 따르면 강남의 코엑스에서 잠실운동장으로 이어지는 축구장 100개의 72만㎡ 부지는 ‘국제교류 복합지구’로 조성될 예정이다. 서울시는 이 지역을 국제업무와 MICE(회의, 포상관광, 컨벤션, 전시회), 스포츠, 문화엔터테인먼트 등 4대 핵심 기능을 담은 서울의 먹거리 단지로 키운다는 전략이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한국전력 부지를 3종일반주거지역에서 일반상업지역이나 준주거지역으로 변경하고 부지의 20~40% 면적을 공공 기여로 제공받기로 했다. 따라서 현대차그룹이 낙찰받은 땅에도 서울시가 추진하는 4대 사업 관련 시설이 포함될 전망이다.

현대차 역시 이 땅에 30여개 계열사를 통합하는 글로벌 헤드쿼터를 마련하고 자동차와 관련한 복합 문화시설도 추가할 계획이다. 또 호텔과 컨벤션센터 등을 건설해 일반 상업 용도가 아닌 복합 문화공간도 건설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다일 기자 aut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