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한국 정치권이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는 대통령 중임제의 모델 국가인 미국은 이 제도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대통령 선거에서 현직 대통령을 물리치기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집권 2기 종료를 앞두고 치러지는 대선이 상대적으로 더 치열하게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현직 대통령 프리미엄이 없는 대선을 앞둔 집권 2기에 여야 간 혈투가 계속되고, 정부의 비효율성이 극에 달하는 정치 퇴행 현상이 역사적으로 반복되고 있다.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연임하는 대통령에게 더 이상 환상을 품기 어렵다. 이른바 피로도 누적 효과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재선에 성공한 미국 대통령은 집권 2기에 국민적 지지도 급락 현상에 시달렸다. 갤럽 조사에서 집권 1기와 2기의 평균 지지율을 보면 해리 트루먼은 56%에서 36%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는 70%에서 60%로, 린든 존슨은 74%에서 50%로, 리처드 닉슨은 56%에서 34%로, 조지 W 부시는 62%에서 37%로 떨어졌다. 다만 로널드 레이건은 50%에서 55%로, 빌 클린턴은 50%에서 61%로 지지율이 올랐다.
버락 오바마는 집권 1기에 평균 49%의 지지율을 기록했으나 최근에는 겨우 40% 안팎에 턱걸이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 임기가 2년여 남았지만 벌써 레임덕 위기론이 퍼져나가고 있다. 이제 미국 대통령 중임제 체제에서는 ‘집권 2기의 저주’가 불가피하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급기야 로런스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은 중임제를 폐기하고 ‘6년 단임제’로 바꾸자고 제안하기에 이르렀다.
국기연 워싱턴특파원 |
집권 2기의 저주는 어김없이 오바마 대통령을 괴롭히고 있다. 극심한 여야 대결로 이민 개혁 작업 등 국내 현안 해결은 요원하다. 해외에서는 IS(이슬람국가) 세력의 발호로 미국이 제2차 테러와의 전쟁에 휘말려들고 있다.
미국 정치의 현실을 들여다보면 과연 대통령 중임제가 바람직한 제도인지 의구심이 든다. 더욱이 한국 정치의 불안 요인이 대통령 단임제에 있다는 주장에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대통령 중임제가 정치 안정을 담보하는 제도라면 그 원동력은 현직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 때문일 것이다. 또 대통령의 힘이 정치 안정의 필요 조건이라면 단임제 대통령의 집권 초반에는 생산적인 정치의 꽃을 피우는 게 정상이다. 그렇다면 박근혜정부 임기 초반에 극대화되고 있는 파행 정치와 국정 마비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개헌 등 제도 개혁은 국민이나 민생과 유리된 ‘그들만의 리그’에 불과하다. 제도보다는 운영이 더 중요하고, 그런 운영을 책임지는 정치인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도 정치 지도자를 국민이 뽑는다는 사실에서 위안을 찾기에는 한국 정치의 현실이 너무 암울하다.
국기연 워싱턴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