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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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10명 중 4명 '저녁이 있는 삶' 못 누린다

도시 거주·소득 낮을수록 가족 저녁식사 빈도 낮아
대기업 건설회사에 다니는 오철민(55·가명)씨는 오늘도 가족과 저녁을 먹지 못한다. 어제는 야근이라 회사 구내식당에서 저녁을 해결했고, 전날은 회식이었다.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과 저녁 식탁에서 마주한 지 오래됐다. 그나마 주말이라도 함께 저녁을 먹을라치면 아이들은 학원 핑계를 댄다. 

야근과 회식이 일상인 샐러리맨에게 가족과의 저녁 식사는 먼 나라 얘기다.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리는 우리 국민은 10명 가운데 6명에 불과하다.

25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일주일의 절반을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은 사람은 64.4%로 나타났다. 2005년 76% 이후 매년 줄어들고 있다. 복지부는 국민건강영양조사를 위해 2005년 이후 매년 만 1세 이상 국민 7000∼8000명을 대상으로 가족 간 식사트렌드를 조사하고 있다. 

연령별로는 청소년(12∼18세)의 가족동반 식사비율이 53.4%로 20대(45.1%)에 이어 두 번째로 낮았다. 밤늦도록 학교와 학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 학생들의 생활패턴을 보여준다. 11세 미만 어린이의 가족동반 식사율은 90%를 넘었다. 경제 활동이 활발한 30∼49세는 68.3%였으며 50∼64세 63.5%, 65세 이상 60.5%였다. 

지역별 격차도 현저했다. 도시(64.7%) 사람들이 시골(읍면·67.4%) 사람들보다 함께 저녁을 먹는 빈도가 낮았다.

저녁이 있는 삶은 경제력과도 연관성을 보였다. 소득수준이 높은 계층의 저녁 동반식사 빈도는 66.6%로, 소득 수준이 낮은 계층(63.1%)보다 높았다. 가난한 사람일수록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을 여유가 없는 셈이다.

삶의 질이 높다고 알려진 북유럽은 메인뉴스 방송시간이 우리보다 이르다. 스웨덴은 오후 7시∼7시30분, 덴마크는 오후 6시30분, 노르웨이는 오후 6시30분∼7시로 조사됐다. 우리나라 공영방송 뉴스는 9시에 시작된다. ‘저녁이 없는 우리의 삶’을 대변하는 지표다.

독일에서 유학온 요아킴 함(28·독일)은 “한국 사람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사생활 없이 일에만 몰두하는 것 같다”며 “퇴근 후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고 텔레비전을 보는 평범한 삶을 동경하는 게 의아스럽다”고 말했다.

조병욱 기자 brightw@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