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한계도 있다. 해외시장 개척, 신사업 추진을 비롯한 대규모 투자와 고용이 수반되는 경영상 결정은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이들 결정은 실패로 돌아갈 위험도 큰 만큼 현재 총수를 대신해 회사를 꾸리고 있는 전문경영인이 추진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재계 전언이다.
그룹 관계자는 “이번 투자로 2195명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3530억원의 생산유발 효과를 낼 것으로 추산된다”며 “총수 공백으로 불가피하게 올해 상반기 투자규모가 축소됐지만, 내수 진작을 위한 필요한 투자는 반드시 집행한다는 게 그룹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SK 역시 계획대로 투자를 진척시키고 있다. SK하이닉스는 경기 이천의 공장 증설을 진행 중이다. 1조8000억원의 공사비가 들어가는 공장동은 내년 7월 말 준공을 거쳐 8월부터 양산을 시작하면 직·간접적으로 4000여개 일자리룰 새로 창출할 것으로 전망된다. SK이노베이션도 울산과 인천에서 파라자일렌(PX) 생산시설을 키우고 있다. 업계에서는 올해 이노베이션의 투자규모를 2조원대 초반으로 보고 있다. 그룹 관계자는 “지난해 투자로 13조원을 집행했는데, 올해는 어려운 사정에도 더욱 키우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목표는 14조∼15조원으로 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들 그룹의 투자는 총수 부재와 더불어 활력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 최태원 회장이 구속 수감된 지난해 SK의 투자규모는 전년(15조1000억원)보다 2조1000억원 줄었다. CJ 역시 이재현 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된 작년 투자액은 전년보다 3000억원 감소한 2조6000억원에 그쳤고, 올해는 2조원을 예상하고 있다. CJ그룹 관계자는 “해외시장 확대를 위한 굵직한 인수·합병(M&A) 건이 총수 부재로 전면 보류돼 투자가 줄고 있다”며 “투자 축소로 고용 역시 2012년 수준에 못 미치고 있다”고 전했다. 2012년 6940명을 새로 고용한 CJ그룹은 지난해에는 4670명을 뽑았고, 올해는 5000명으로 잠정 결정했다. SK는 같은 기간 7500명, 7650명, 8000명(예상치)으로 고용을 늘리고 있기는 하나, 그룹 규모로 보면 사실상 정체 수준이다.
SK 역시 멕시코 석유개발 시장에 뛰어드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대규모 투자규모와 리스크 부담으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호주의 석유 유통업에 뛰어드는 방안은 포기했다.
재계 관계자는 “우리 현실에서 경영 전권을 쥔 오너와 달리 전문경영인은 현금흐름 위주로 보수적으로 경영할 수밖에 없다”며 “총수 부재가 기업의 활력과 사기를 떨어뜨리는 것은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황계식 기자 cult@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