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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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기술종속’ 못 벗는데 ‘샌드위치 코리아’ 벗어나겠나

우리나라의 기술무역수지 적자 규모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가장 크다고 한다. 어제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이 내놓은 기술무역 현황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12년 기술 도입액이 110억5000만달러에 이른 반면 수출액은 53억1000만달러에 그쳤다. 수출액이 도입액의 절반 아래로 추락한 것이다. 적자 규모는 57억4000만달러로 10년 연속 적자였다.

기술 적자는 해가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2003년 24억2000만달러였던 적자는 2012년 50억달러를 훌쩍 넘어섰다. 9년 새 두 배 넘게 불었다. 기술 적자는 미국, 일본, 독일 등 선진국과의 교역에서 주로 발생했고 중국, 베트남 등 개발도상국한테서는 이익을 본 것으로 나타났다. 개발도상국에서 얻은 이익을 선진국에 고스란히 갖다 바치는 구조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에 놓인 ‘샌드위치 코리아’의 실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문제는 그렇게나마 서 있을 자리가 여의치 않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가 17억7000만달러의 기술 흑자를 기록한 중국이 빠를 속도로 추격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세계시장에서 수출 점유율 1위를 차지한 품목은 2012년 1485개에 달했다. 2002년 802개보다 배 가까이 늘어난 규모다. 우리나라는 같은 기간 71개에서 64개로 되레 줄어들었다. 2012년 한 해에만 6개 품목에서 세계 1위 왕좌를 중국에 빼앗겼다. 간신히 1위 자리를 지킨 품목도 언제 자리를 빼앗길지 모르는 위태로운 지경이다. 중국은 12개 품목에서 우리나라 뒤를 바짝 추격 중이다.

주요 수출품목이 중국에 잇달아 추월당하는 현상은 중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을 중심으로 제조·생산의 노하우가 속속 넘어가는 현상과 무관치 않다. 하지만 근본 원인은 원천기술을 확보하지 못한 부실한 기술 인프라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스스로 “정보기술(IT) 강국”이라고 말한다. 과연 그런가. 말만 그렇게 하고 있을 뿐이다. 원천기술에서는 선진국에 턱없이 못 미친다. 이 때문에 휴대전화, 반도체 등 전자제품을 수출하면 할수록 해외에 지불하는 로열티는 덩달아 불어난다. 대일 적자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기술 종속’에서 벗어나지 않고서는 적자 개선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미래 경제경쟁에서 승리를 장담하기는 더욱 힘들다.

해답은 간단하다. 연구개발(R&D) 투자 강화를 통해 미래 유망분야의 원천기술을 늘리는 일에 올인해야 한다. 선진국과의 기술 격차를 좁히고 후발국의 추격을 따돌릴 수 있는 핵심기술을 지속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기업의 제품 경쟁력을 높이고 우리 경제의 지속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박근혜정부의 ‘창조경제’가 방점을 찍고 추진해야 할 국가적 과제는 바로 기술종속에서 벗어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