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S 스토리] "혹시 날 엿볼라" 카톡 엑소더스

텔레그램등 해외 앱 사이버 망명 러시
직장인 박철우(31)씨는 최근 독일의 스마트폰 메신저 앱 ‘텔레그램’을 깔았다가 깜짝 놀랐다. 먼저 가입한 지인들의 메시지가 쏟아졌기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해외 메신저를 쓰고 있을 줄 몰랐다”고 말했다. 박씨의 스마트폰에서는 텔레그램을 통해 오는 메시지가 카카오톡 메시지를 추월하려 하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스마트폰을 켜고 습관처럼 누르던 카카오톡 대신에 이제는 텔레그램으로 손이 먼저 간다.

박씨처럼 국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대신 해외 앱을 애용하는 사람들이 폭증하고 있다. 3일 현재 우리나라 텔레그램 사용자는 이미 25만명을 넘어섰다. 앱을 다운받을 수 있는 앱스토어에서 난공불락 같던 ‘카카오톡’을 누르고 다운로드 순위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최근 기자도 텔레그램을 설치했다. 매일 수십명의 지인이 새로 가입했다는 알림이 울린다. 신규 가입자는 정보기관 관계자부터 군 장성, 무기중개업체 관계자, 경찰 등 보안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뿐만 아니라 국회 보좌관, 시민단체 활동가, 대학생, 직장인 등 다양했다.

텔레그램을 쓰는 한 정부 관계자는 “중요한 대화는 전화나 메신저로 하지 않지만 조심하는 차원에서 앱을 설치했다”고 말했다.

프로그램 개발자 김모(32)씨도 “내 사생활을 누군가 훔쳐 볼 수 있다는 생각에 텔레그램을 깔았다”며 “편리하고 좋은 국내 프로그램을 두고 해외 프로그램을 쓰려니 조금 씁쓸한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국내 한 보안전문가는 “중동에서는 자국의 수사망을 피해 카카오톡을 쓴다는 이야기도 있다”면서 “독일이나 미국에서 벌어졌던 도·감청 논란을 감안하면 해외 메신저라고 해서 무조건 안전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경고했다. 자칫 국가 기밀이 외국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카카오톡이나 라인 등 모바일 메신저 업계 관계자들은 겉으로는 태연한 척하지만 속으로는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카카오톡 한 관계자는 “현재 특별한 대응없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며 “고객이 탈퇴를 하거나 하는 등의 큰 변화는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업체 관계자는 “최근 새로운 서비스를 시작하는 상황에서 가입자들이 빠져나가는 일이 벌어져 당혹스럽다”고 했다. 외국앱이 반짝 인기에 그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과거에도 도·감청 논란이 발생했을 때 일부 해외 메신저가 인기를 끌었다가 이내 사그라졌기 때문이다.

임종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장은 “하루 수천만명이 이용하는 메신저에서 특정인을 실시간 사찰하거나 서버에서 지워진 정보를 되살리기는 기술적으로 어렵다”며 “당장은 불안감으로 해외 메신저를 이용하는 사람이 늘 수도 있지만 사이버 망명으로 고착화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조병욱 기자 brightw@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