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홍 수석논설위원 |
결산 심사가 대충대충이다. 2013년 회계연도 결산안 심사 과정을 들여다보면 기가 차다. 지난해 쓴 예산은 349조원이다. 예결위 결산심사소위는 이렇게 많은 돈의 씀씀이를 점검하는 일을 불과 나흘 만에 뚝딱 해치웠다. 그 나흘도 실제 살펴본 시간으로 따지면 96시간의 절반도 안된다. 6·4 지방선거와 7·30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세월호법 논란 때문이라지만 올해만 그런 것이 아니다. 늘 이런 식이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봐도 부족한 판에 망원경으로 보는 둥 마는 둥 한다. 복습을 게을리하니 새 숙제를 풀기가 쉽지 않다. 국회란 곳이 소리만 크고 말만 번지르르했지 예·결산에 관한 한 게으른 청맹과니 수준이다.
일년치 국가 예산안이 자판기에서 커피 뽑아내듯 나오는 것은 아니다. 기획재정부 예산실 직원 170여명이 6월부터 석 달가량 휴일도 없이 매달려 만들어 낸다. 그들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할지 모르지만 그게 진짜 ‘최선’이었는지 늘 의심스럽다. 시대가 바뀌고 세월이 흘러도 ‘영혼없는 공무원’이 갈수록 늘고 있듯이 정부 예산안 또한 정권이 바뀌고 정부청사가 세종로에서 세종시로 옮겨가도 ‘영혼없는 예산’을 답습하기는 마찬가지다. 장밋빛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근거로 뻥튀기 예산안을 내놓고는 세수 부족 핑계를 늘어놓는 식의 기계적이고 관행적인 숫자놀음을 멈추지 않는다. 지난해 1조원가량 삭감됐던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을 경제를 활성화한다며 3.0% 늘리면서도 보육원 어린이들 한 끼 밥값 올리는 데는 부들부들 떤다. 국회가 우습기 때문이다. 잘못이 있어도 제대로 혼나본 적이 없고, 어쩌다 들켜도 머리 한번 숙이면 넘어갈 수 있다.
국회 국정감사가 끝나면 내년 예산안 심사에 들어간다. 예산안 처리 법정시한을 지킨다면 심사 기간은 기껏해야 한 달 정도밖에 안 된다. 이 한 달마저도 온전히 예산안 심의에 쓸 수 있을지 의문이다. 닳고 닳은 공무원들이 곳곳에 그려놓은 숨은 그림을 국회의원들이 찾아내기란 쉽지 않다. 재무 보고서상의 ‘마이너스’를 뜻하는 기호인 ‘델타(△)’를 ‘플러스’ 의미로 알 정도의 실력이면 열공이라도 해야 하는데 공부는 고사하고 뜻도 없다. 결산안 심사를 처삼촌 벌초하듯 하는 터에 예산안 심사라고 정성을 다할 턱이 없다. 책상에 잔뜩 쌓인 예산안 자료 한 번 들춰 볼 생각도 하지 않고 아예 눈을 감고 있는 의원들이 너무 많다.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기는 한다. 지역구 예산을 따내는 일이다. 국민이 보기에 예산은 민생인데 국회의원들 눈엔 잘 차려진 잔칫상이다. 그래서 ‘예산 전쟁’이라고 한다. 결산 심의를 잘 넘긴 공무원들도 올해 예산 심의에 거는 기대가 그 어느 때보다 크다.
김기홍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