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103세로 소천한 방지일 목사(영등포교회 원로)는 한국교회의 큰 어른이요, 마지막까지 복음을 전파한 성직자의 표상이었다. 그는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군부 독재시절, 민주화와 첨단 정보화 시대에 이르기까지 파란만장한 100년의 한국사를 올곧게 걸어왔으며, 한국교회의 태동과 시련, 부흥의 역사를 온몸으로 체험한 한국 개신교의 산증인이자 ‘영원한 현역’이었다.
1911년 평북 선천에서 태어난 방 목사는 평양숭실대 영문과를 졸업한 뒤 평양 대부흥운동의 중심지였던 장대현교회에서 전도사로 일했다. 1937년 평양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자마자 중국 산둥성에 선교사로 나가 20년 이상 중국 선교사로 분투했다. 1957년 귀국 후에는 영등포교회 담임목사로 일하다 은퇴했고, 예장통합 교단장, 대한성서공회 이사장 등을 맡아 헌신했다.
그는 100세가 넘도록 왕성한 활동을 이어갔다. 자신을 찾는 교회가 있으면 어디든 달려가 설교단 위에 섰다. “복음을 위해서라면 힘이 남아 있는 한 어디든지 달려 가겠다”는 목회관을 끝까지 견지한 것이다. 다리가 불편해 휠체어를 타고부터는 인터넷에 접속해 세계 각지 선교사들과 이메일을 주고받는 것으로 소통을 대신했다. 하루 일과는 새벽 3시에 시작됐다.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며, 글을 썼다. 다리 근력 운동을 위해 욕조에 물을 받아놓고 찬송을 부르기도 했다. 매일 아침 쉬지 않는 성경 읽기와 기도, 50년 넘게 계속한 월요성경공부 모임은 그의 삶을 충만하게 하는 활력소였다. 이를 통해 길러낸 제자만 2000명이 넘으며, 모두 교계의 일꾼이 됐다.
그는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기 위해 ‘자기’를 철저히 버렸다. 지난 7월 열린 ‘한국교회와 목회자 갱신을 위한 회초리 기도대성회’ 때는 직접 포스터 모델로 나섰다. 포스터 속에는 그가 바지를 걷고 회초리로 자신의 종아리를 내리치는 모습이 담겨 가슴이 먹먹하고 저리다. 스스로를 징계할 수 있어야 타인을 꾸짖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3년 전만해도 90분간 서서 강연한 그였다. 탁자에 손을 짚는 것은 몰라도, 앉아서 하는 건 용납이 안 됐다. 늘 대중을 높고 크게 봤다.
방 목사는 우리 삶을 속사람과 겉사람의 싸움으로 말했다. 예수가 ‘누구든지 날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버리라’고 하신 말씀의 의미를 자기를 이기라는 뜻으로 해석한 것이다. 신앙의 힘은 거기에 있었다. 진정한 하나님의 복이란 마음으로부터 양심의 자유를 얻는 것이었으며, 건강비결은 심방을 열심히 다니고, 심장이 감동받게 하고, 심호흡하는 ‘삼심’이 전부였다. ‘닳아질지언정 녹슬지 않겠다’는 신조는 그의 지치지 않는 열정과 부지런함을 대변한다. 생전에 국민훈장 모란장, 숭실인 추양목회대상, 언더우드선교상 등을 받았지만, 이보다 큰 하나님의 상이 저 나라에서 기다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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