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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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운전일까 아닐까···경찰도 헷갈려요"

경찰교육원, 경찰관 대상 '음주운전 수사론' 발간
시내 식당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과음한 A씨. 과감히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고 기어를 'D'자에 넣었다. 하지만, 술기운을 이기지 못해 차를 몰지는 않고 브레이크를 밟은 채 운전석에 앉아 있었다.

집에서 술을 마시던 B씨는 집 앞에 세워둔 차를 빼달라는 연락을 받고 나갔다. 차를 경사면에 세워놓았기에 B씨는 차 시동을 켜지 않고 기어 중립 상태로 비탈길을 내려갔다.

경찰관이 이들을 봤을 때 두 사람은 어떻게 될까.

음주운전으로 단속되는 것은 A씨다.

차가 움직이지 않았다고 해도 시동을 켜고 기어를 주행으로 맞추기만 해도 운전할 의사가 있었다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차 시동을 켜지 않았다면 운전을 한 것으로 볼 수 없기에 중력으로 비탈길을 내려가는 것은 음주운전에 해당하지 않는다.

경찰교육원은 24일 이같이 일선 경찰관도 헷갈릴 수밖에 없는 복잡한 음주운전 사례와 단속 방법 등을 정리한 책자인 '음주운전수사론'을 발간했다.

이 책에 따르면 도로교통법상 도로가 아닌 곳에서 음주운전을 하다 사고를 내면 형사처벌 대상은 될 수 있으나 면허취소는 할 수 없다.

아파트 단지나 대학 구내, 식당 주차장 등 사적 공간으로 차단기 등에 의해 출입이 통제되는 곳이라면 도로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같은 장소라도 출입 통제가 이뤄지지 않았다면 도로가 되고, 이때 음주운전을 했다면 면허 행정처분 대상이 된다.

자동차 시동을 켜고 기어를 주행으로 놓기만 하면 차가 움직이지 않아도 운전을 한 것으로 간주한다. 이 때문에 아주 조금만 차량을 움직였다고 해도 처벌을 면할 수 없다.

2007년 3월 대법원은 술을 먹고 주상복합 주차장에서 차를 몰고 나와 주차장 입구와 연결된 도로에 차 앞부분이 30㎝가량 걸치게 한 운전자에 대해 도로교통법(음주운전)을 위반했다고 판결했다.

운전을 할 의지가 없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차 안에서 히터를 틀려고 시동을 걸다가, 시동을 켠 채 잠을 자다 자기도 모르게 기어를 움직여 차를 이동시키는 경우 등은 음주운전이 아니라는 판결이 나오고 있다.

이와 함께 음주단속을 하는 경찰관은 운전자가 술을 마신 후 경과한 시간과 상관없이 혈중 알코올 농도를 측정하기 전에는 반드시 운전자가 맑은 물로 충분히 입안을 헹구게 해야 한다.

운전자가 알코올 농도 측정을 거부하면 경찰관은 10분 간격으로 세 번 측정을 요구한다. 세 번째 요청도 거부하면 측정거부 혐의로 현행범으로 체포된다.

운전자가 호흡 측정기에 의한 측정 결과가 나왔는데 이에 불복하고 채혈 측정을 요구하려면 30분 내에 해야 한다. 대법원은 한 시간이 지나고 나서 채혈 측정하겠다는 운전자의 요구를 거부한 경찰관의 처분이 정당하다고 판결한 바 있다.

호흡 측정기가 미심쩍은 운전자는 경찰관에게 바로 채혈 측정을 해 달라고 요구할 수도 있다.

한편, 위드마크 공식으로 계산했을 때 몸무게 70㎏인 남자가 소주 한 병을 마셨으면 최소 4시간 6분이 지나야 운전할 수 있다고 책자는 소개했다.

체중 60㎏인 여성이 생맥주 2천㏄를 먹었다면 최소 7시간 53분, 몸무게 80㎏인 남자가 막걸리 한 병을 비웠다면 2시간 22분 후에야 운전할 수 있다.

생활에 유용한 정보가 자세히 정리돼 있지만 이 책자는 경찰 내부용이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