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정조는 대략 500여 편의 시를 지었는데 형식적으로도 다양하고 시기적으로도 평생에 걸쳐 지속적으로 썼다고 한다. 비평가로서의 정조는 정약용에게 ‘시경’에 관한 600여 개의 질문을 던져 40일 이내에 답변을 요구할 정도로 관심이 깊었다. 정약용은 미처 답변을 준비하지 못해 쩔쩔매다가 20일을 더 연장해달라고 청했을 정도다. 시경이 300여 편으로 이루어졌으니 모든 시마다 한두 개의 질문을 조목조목 꼼꼼하게 던진 셈이다. 세계 역사상 왕과 신하가 그 문화권 최고의 고전을 놓고 600여 개의 질문을 주고받은 건 유례없는 일이라고 최 시인은 목소리를 높인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조차 500여 편의 시를 지은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라고 하니 정조의 인문적 소양은 가위 찬탄할 만하다.
현대에 이르러 서구 쪽에서 문학을 아는 대통령으로 가장 성공한 이를 꼽는다면 단연 체코의 바츨라프 하벨(1936∼2011)이 일순위로 떠오른다. 하벨은 스무 살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주로 희곡과 시를 썼는데 공산주의체제에서 미래가 없는 중산층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1968년 ‘프라하의 봄’을 소련이 탱크로 밀고 들어와 좌절시키는 과정에서 하벨은 작가에서 반체제 인사로 거듭났고, 1977년 ‘77헌장’을 공표하면서 세계적인 인물로 부각됐다. 체코슬로바키아와 체코의 대통령으로 두 번이나 재임했다. 하벨은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서도 희곡 ‘떠남’을 발표해 체코뿐 아니라 미국 영국의 연극무대에 올리는가 하면, 시나리오로 각색해 직접 감독한 영화를 선보이기도 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칠레의 시인 네루다가 외교관으로 세계를 누볐고 자신 대신 그의 친구 살바도르 아옌데를 대통령으로 만든 사례도 특기할 만하다.
정치의 세계에서 문학은 목걸이나 귀걸이처럼 장식품으로 활용될 수도 있다. 문학적 소양이나 관심이 정치인들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이유는 ‘인간에 대한 이해’의 가장 훌륭한 통로이기 때문이다. 시 한 줄 외운다고 인간에 대한 이해가 하루아침에 나아질 리는 없다. 의사당에서 스마트폰으로 엉뚱한 사진 볼 시간은 있어도 단편소설 하나 읽을 시간은 없다고 손사래를 치겠지만, 적어도 최소한 문학이라는 액세서리라도 걸치려고 노력하는 포즈조차 귀해 보이는 시절이다. 정치 지도자들이 인문적 지향성을 몸소 보일 때, 그들을 향한 신뢰와 전체적인 사회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다는 기대는 잠꼬대에 불과한 것일까. 정조가 신하들과 시를 나누며 소통했듯이 안타까운 불통의 시절에 인간을 이해하고 상대방의 마음을 알아주는 정치, 우리에게는 정녕 꿈인가.
조용호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