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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창작 원천… ‘이야기’가 뜬다

영화 ‘라이언 일병…’ ‘스타워즈 4’
시공만 바뀌었을뿐 흡사 하지만 사람들에겐 다른 이야기로 보여
#1 “할리우드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스타워즈 에피소드4’는 80% 이상 닮았다.” 장편소설 ‘영원한 제국’의 작가로 유명한 이화여대 이인화 교수의 말이다. 이 교수에 따르면 나치(시스)가 지배하는 부조리한 세상에서 위기에 처한 라이언 일병(레아 공주)을 구하고자 정의로운 주인공 존 밀러 대위(루크 스카이워커)가 모험을 떠난다는 점에서 두 작품은 거의 일치한다. 시대와 공간, 등장인물만 바뀌었을 뿐 기본적인 이야기 구조는 똑같다는 뜻이다.

#2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운영하는 ‘대한민국 스토리 공모대전’이란 대회가 있다. 장차 영화·드라마·애니메이션·만화 등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순수 창작 콘텐츠를 뽑는 게 공모전의 목적이다. 응모자들은 ‘완성품’ 대신 A4용지 60쪽 분량의 ‘줄거리’를 갖고 경합을 펼친다. 이 공모전에서 입상한 A씨는 자신이 구상한 이야기에 뼈대와 살을 붙여 200자 원고지 기준 1000매 이상의 장편소설로 만든 뒤 각종 문학상에 출품하기로 결심하고 준비하는 중이다.

바야흐로 ‘이야기’가 돈이 되는 시대다. 탄탄한 이야기는 그 자체로 문화콘텐츠 산업의 융성을 가져온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스타워즈 에피소드4’의 사례에서 보듯 같은 이야기라도 시공을 달리하고 주인공을 바꾸면 세상 사람들에겐 전혀 다른 이야기로 받아들여진다. 하나의 이야기를 소설·연극·드라마·영화·뮤지컬·애니메이션·게임 등 다양한 장르로 변주시키는 이른바 ‘원소스 멀티유즈(OSMU)’도 흔해졌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스타워즈 에피소드4’. 이인화 교수는 “두 영화는 시간, 공간, 등장인물만 다를 뿐 기본적인 이야기 구조는 80% 이상 똑같다”고 단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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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기록·문헌은 창작의 보고”


문화심리학자인 김정운 전 명지대 교수는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며 “기존에 있던 것들을 적당히 편집하는 게 바로 창조의 지름길”이라고 강조한다. 그에 따르면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기존에 없던 색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도 가능이야 하겠으나, 그러자면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 이미 존재하는 이야기를 약간 변형하거나, 몇 개의 이야기를 서로 합치는 게 좋은 전략일 수 있다.

지난 20일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옛 기록, 이야기로 피다’라는 제목의 국제콘퍼런스가 열렸다. 우리 고전을 다양한 소설에 반영해 온 성석제 작가, ‘조선왕조실록’을 만화로 옮긴 박시백 작가, KBS 드라마 ‘정도전’의 대본을 집필한 정현민 작가 등이 참석해 옛 기록과 문헌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들을 창작 소재로 활용하는 방안을 놓고서 활발한 토론을 벌였다.

정 작가는 “과거는 결국 현재와 맞닿아 있다. 과거에도 인간은 정치 활동을 했고, 경제 활동을 이어갔으며, 문화생활을 즐겼다”며 “전통 기록과 자료는 새로운 소재를 발견하고 익숙한 공감을 끌어낼 수 있는 장으로서의 가치를 가진다”고 주장했다. 박 작가 역시 “왕조실록은 창작의 소재가 되는 콘텐츠를 풍부하게 담고 있는 보물창고”라고 거듭 강조했다.

올해 대종상에서 작품상 등 4개 부문을 휩쓴 영화 ‘명량’.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토대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삶과 임진왜란을 사실적으로 그리되 현대적 해석을 가미함으로써 17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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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우리의 이야기가 한국을 넘어 전 세계인의 공감을 얻으려면 우리 고유의 것에만 집착할 게 아니라 이웃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일례로 영화 ‘아바타’를 만든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인도의 고대 서사시 ‘마하바라타’에서 모티브를 얻어 영화의 몇몇 장면을 제작했다”며 “언젠가 ‘마하바라타’나 ‘라마아냐’ 같은 인도 서사시를 영화로 제작하고 싶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한국도 2015년 개관을 앞둔 광주 아시아문화전당 아시아문화정보원을 중심으로 외국 이야기를 모으기 시작했다. 지난 9월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14 아시아 스토리텔링 페스티벌’은 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우즈베키스탄 4개국 정부 관계자와 작가들이 참가해 자국의 옛 이야기를 문화 콘텐츠로 만들어 성공한 사례를 소개하고, 아시아의 이야기를 전 세계에 널리 알릴 방안에 관해 의견을 나눴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