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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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연계 수능출제 자율·창의성 제한”

출제자 인식 안이하게 만들어… 문항개발 쏟는 시간 보름 남짓
출제자도 특정대학·학과 편중, 검토위원 제대로 검증 어려워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대학수학능력시험 출제 방식을 재검토하라고 주문함에 따라 현행 수능 체제의 ‘대수술’이 예고된다.

교육부가 지난 24일 올해 수능 생명과학 Ⅱ 8번 문항과 영어 25번 문항의 복수정답 인정을 발표하면서 가칭 ‘수능 출제 및 운영 체제 개선 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수능 출제시스템의 개선안을 일부 언급했지만 이보다 폭과 강도가 훨씬 높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교육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현재 수능 출제 방식의 문제점으로 크게 ▲짧은 출제 기간 ▲출제위원과 검토위원의 수직관계 ▲출제위원 특정대학 출신 독식 ▲EBS 70% 연계정책 등을 들고 있다.

출제위원과 검토위원들은 수도권 모처에 한 달 남짓 합숙을 하면서 7개 영역, 35개 과목에 걸쳐 1025문항을 개발한다. 하지만 출제된 문제를 인쇄하고 학교에 배포하는 기간을 제외하면 실제 문항개발에 쏟는 시간은 보름밖에 되지 않는다. 오류가 없는 문항을 만들고 검토하기에는 부족한 기간이다.

특정 대학 출신과 특정 학과 출신이 다수 출제진으로 참여해 제대로 된 검증이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출제위원=교수, 검토위원=고교 교사’의 수직관계나 다름없는 현행 출제시스템으로는 검토위원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출제 오류를 걸러내는 데 문제가 있다는 의견도 강하게 제기됐다.

실제 이번에 복수정답 처리가 된 생명과학Ⅱ 8번 문항의 경우 검토위원이 오류 가능성을 제기했지만 검토위원과 출제위원 간 논의 끝에 ‘오류 없음’으로 결론 나 그대로 출제됐다.

EBS 수능 연계 역시 한계에 봉착했다는 의견도 지배적이다. 이번에 출제 오류로 판명된 생명과학 Ⅱ 8번 문항과 영어 25번 문항이 공교롭게 EBS 연계 문항이어서 EBS 수능 연계가 논란의 초점이 됐다.

한편, 새정치민주연합 박홍근 의원 주최로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 회관에서 열린 ‘수능오류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 긴급 토론회에서는 문제은행 방식 출제, EBS 연계 출제 재검토, 판서식 EBS 강의방식 대폭 수정 등 수능 출제방식 변경과 관련된 다양한 의견이 쏟아졌다.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현재와 같은 단기간 합숙 출제시스템은 오류가 불가피하다며 문제은행 방식을 제안하기도 했다. 양 교수는 특히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다양한 출제진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 부족을 현 수능체제의 문제로 집중 거론했다.

양 교수는 “역대 수능출제위원장의 재직 대학을 보면 다양한 대학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학부 출신대학을 분석하면 99%가 서울대”라면서 “지금까지 수능 출제위원의 구성이 어떠했을지 상상에 맡긴다”고 말했다.

특히 EBS 연계 방식을 두고 교육 현장에 몸담은 교사·강사의 쓴소리가 따가웠다.

조왕호 서울 대일고 교사는 “EBS 연계 정책이 EBS 교재를 고3 교실 교과서로 만들고, 과거 학력고사 시대 암기방식으로 돌아가고 있다”며 “EBS 연계가 시험출제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제한하고 오히려 출제자들을 안이한 자세로 출제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대훈 전 EBS 강사는 “EBS 강의방식은 과거 판서식으로 천편일률적이고 주입식으로 학교에서 나름대로 창의적 재량학습을 하는 교사들에게 오히려 허탈감을 주고 있다”며 “발전적 모델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정우·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