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정부예산안과 부수법안이 어제 국회 본회의에 자동 부의됐다. 예산안과 부수법안의 국회 심의 기한을 11월30일로 못박은 국회법(선진화법)이 처음 적용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야는 1박2일 일정으로 물밑 협상을 계속하는 중이다. 예산안 처리 날짜가 오늘로 다가왔는데도 최종 향방은 아직 오리무중인 셈이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어제 “예산안 처리 날짜는 영구히 지켜져야 한다”고 했다. “국회가 헌법을 지키지 않는다면 누가 지키겠느냐”면서 한 말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12월2일까지 국회가 예산안을 처리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정치권은 헌법 규정을 밥 먹듯이 어겨 왔다. 블랙코미디였다. 정 의장 발언이 아니더라도, 법질서의 기본인 헌법의 명문규정까지 대놓고 짓밟는 국회의 꼴불견 관행은 더 이상 허용될 수 없다. 국회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예산안을 적법 처리해 새 이정표로 삼아야 한다.
어제 본회의에 올라간 정부예산안은 376조원 규모다. 그 돈은 원칙적으로 모두 혈세에서 나온다. 국민 허리를 휘게 하는 짐인 것이다. 국회는 현미경을 통해 낭비 요소를 짚어내고 허투루 쓰일 항목을 철저히 걸러내야 했다. 유감스럽게도 그렇게 한 기색은 거의 없다. 여야는 9월 정기국회 초입부터 정쟁으로 소일하며 시간을 낭비했다. 날림 심의를 자초한 결과다. 결국 여야가 정부 원안에서 감액하기로 합의한 것은 금액으로 따져 3조원 안팎이라고 한다. 낭비 요소가 원안의 1%에 불과하다고 여기는 모양이다. 정부의 확장형 재정 청사진이 완벽에 가깝게 짜였다는 것인가. 아니면 국회 심의가 허술했다는 것인가. 전자의 경우로 볼 국민이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다.
이 정부예산안마저 허수아비나 다름없으니 더 큰 문제다. 여야는 최종 합의점이 도출되면 정부 원안 대신에 수정동의안을 통과시킬 방침이다. 하지만 그 실체는 현재로선 없는 것이나 진배없다. 각 상임위원회에서 올라온 증액분 규모가 16조원에 달해 뭘 더하고 뺄지가 유동적인 탓이다. 여당은 이미 90% 이상 심사가 마무리됐다며 합의 도출을 자신하지만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는 법이다. 여야는 심지어 협상이 깨질 경우에 대비해 각자 수정안을 다듬고 있다고 한다. 오늘 표 대결 가능성마저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가장 경계할 것은 여야가 연장 심의를 통해 악수(惡手)를 두는 경우다. 가뜩이나 과잉 복지 프로그램으로 인해 중앙·지방 정부 재정이 곤란한 판국이다. 나라살림을 거덜낼 예산 악수는 제발 피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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