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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들의 상심과 분노…'갑질 부조리' 깨뜨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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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대한항공 '땅콩 리턴' 파문 일파만파 ‘왜’
기내 서비스를 문제 삼아 비행기를 돌린 사건이 국제적인 뉴스거리가 될 수 있을까. 지난 8일 세계일보 첫 보도를 통해 불거진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리턴’ 사건은 사과와 해명에도 불구하고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대한항공 측의 미숙한 초기 대응에다가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의무)를 요구하는 시민감정을 제대로 읽지 못한 사주 측 행동이 사태를 키우고 있다는 분석이다. 무엇보다 진실을 거짓으로 위장할수 있다고 생각한 오판이 사태를 키웠다. 매일 하나씩 드러나는 진실 앞에 독자들은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지 못하고 있다. ‘사주 가족은 항공기조차 돌릴 수 있다’는 잠재된 특권의식에 분노했던 시민들은 이제 최종 종착지가 무엇인지 궁금해하고 있다.

12일 서울 강서구 공항동 대한항공 본사 로비에서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이 ‘램프 리턴’으로 물의를 일으킨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 관련 기자회견에 앞서 고개를 숙여 사과하고 있다(위쪽 사진). 조 전 부사장도 이날 서울 강서구 공항동 국토교통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에서 조사를 받기 전 사과하고 있다.
남정탁 기자
◆양파 껍질 까듯 드러나는 진실


‘땅콩 리턴’ 보도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빠르게 퍼져나갔다. 대중은 “항공사 부사장이라고 항공기를 개인 소유물로 생각하는 것이냐”며 조 전 부사장의 특권의식을 지적했다. 사내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내용이 회자됐고, 스마트 시대에 더 이상 비밀은 없다는 것을 보여줬다.

대한항공은 이날 밤 사과문을 발표하며 반전을 시도했다. 200자 원고지 3장 분량 중 사과는 반 장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사무장 잘못을 설명하는 데 할애했다. “조 부사장은 기내 서비스와 기내식을 책임지고 있는 임원으로서 문제 제기 및 지적은 당연한 일”이라는 것이 핵심 메시지였다.

시민들은 사회 지도층 인사들에게 더 높은 책임성과 도덕성을 기대하기 마련인데, 이번 사건은 그 반대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조 전 부사장이 진정성 있는 사과 대신 사무장의 잘못에 초점을 맞춰 책임을 전가하고 자기는 빠져나가려고 한 게 기름을 부은 꼴이 됐다.

설동훈 전북대 교수(사회학)는 “비행기를 돌려 세우는 무소불위의 권력 행사에 대해서 국민이 분노하고 있는데도 책임전가 식으로 변명해 더 큰 분노를 샀다”고 말했다.

◆‘무늬만 사퇴’로 결정타


대한항공은 ‘적반하장 사과문’으로 악화된 여론을 되돌리고자 조 전 부사장의 사퇴를 꺼내들었지만 되레 국민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조 전 부사장은 기내서비스 및 호텔사업 부문 총괄본부장에서 물러날 뜻을 밝혔다. 하지만 대한항공 등기이사 및 부사장, 계열사 대표이사직은 내놓지 않아 곧바로 ‘무늬만 사퇴’라는 비판을 샀다. 여론을 되돌릴 기회를 완전히 놓쳤다.

외신들은 ‘땅콩 리턴’ 사태를 보도하며 대한항공은 국제적으로 망신당했고, 뉴욕의 한인 교포들은 대한항공 불매운동에 나섰다.

재계에서는 이번 파문으로 자칫 반기업·반재벌 정서가 확산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분위기다. 가뜩이나 대내외 경제환경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기업 활동에 적잖은 부담이기 때문이다.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대한항공은) 우리가 한 번도 보기 어려웠던 황당한 대응을 보여줬다”며 “지금이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진상을 다 고백하고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현태·권이선 기자 sht98@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