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함 납품 비리 의혹을 파헤친 감사원이 최근 황기철 해군 참모총장에 대한 인사조치를 국방부에 요구하기로 내부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문책 경질을 촉구하는 것이나 진배없다. 말문이 막힌다. 최종 결정은 아직 지켜볼 일이지만, 감사원 결론이 타당하다면 대한민국 해군은 윗물까지 속속들이 썩은 것으로 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상탁하부정(上濁下不淨)이란 옛말을 곱씹게 된다. 충무공 볼 낯이 있는지도 묻지 않을 수 없다.
2008∼2010년 방위사업청 함정사업부장을 지낸 황 총장은 2009년 통영함 납품 업무를 총괄했다. 그간 국정감사 등에서 책임을 추궁받은 이유다. 답변은 한결같았다. 최종 사인만 했을 뿐 2억원짜리 음파탐지기(HMS)를 41억원으로 부풀린 원가 산정 문제 등은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방산 비리와 무관하다는 얘기였다. 감사원 관점은 다르다. 황 총장이 당시 HMS 인수계약 관련 회의를 주재하면서 노골적인 봐주기를 한 것으로 본다. 납품업체 사업계획서 제출 시한을 두 차례 미뤄주고, 평가 서류도 없는 상태에서 구매 의결을 추진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1590억원을 들여 제작된 3500t급 통영함은 우리 바다를 누비는 대신 공중에 붕 떠 있다. 블랙코미디가 따로 없다. 핵심 장비인 HMS가 1970년대 건조된 평택함과 동일한 사양으로 21세기 해군의 요구 수준에 크게 못 미쳐 제 역할을 할 수 없는 탓이다. 통영함은 ‘최첨단 수상 구조함’이란 수식어가 무색하게도 물고기를 잡는 음파탐지기를 장착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때 구조 현장에 투입되지도 못했다. 해군은 지난해 10월 인수를 거부했다. 돈 낭비만이 아니다. 안보차질 문제도 심각하다.
왜 이 지경이 됐을까. 일각에선 해군사관학교 출신 ‘군피아’ 네트워크가 작동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감사원 조사 결과로 미루어 해군 현직 수뇌부가 연루돼 있을 공산도 배제하기 힘들다. 단 12척의 배로 나라를 지킨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후예들이 이런 물의나 빚고 있다.
5000만 국민은 우리 국군을 믿는다. 적어도 군의 안보 태세가 못 미더워서 두 발 뻗고 밤잠을 잘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은 아닐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저질 연속극처럼 이어지는 방산 비리 시리즈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신뢰는 불신으로, 안심은 불안으로, 칭찬은 비난으로 바뀌지 않을 수 없다. 방산 비리는 내부의 적이다. 국민 생명과 재산을 위협하는 암적 존재다. 이를 방치한 채로는 한 걸음도 전진할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부터 정신을 바짝 차리고 성역 없는 대청소에 나서야 한다. 비린내 진동하는 방산 비리가 해군만의 일인지도 엄중히 점검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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