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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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성의 씨네 IN&OUT] 결정적 순간에 멈춘 화면, 관객에겐 잊지 못할 여운

움직이던 화면이 갑자기 멈추어 섰을 때 더욱 깊은 인상을 남긴다.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의 영화 ‘400번의 구타’(1959)가 보여준 라스트 신은 아직도 ‘충격’으로 다가온다. 주인공 앙투안이 소년원을 탈출한 뒤 해변에 도착한다. 앙투안이 카메라를 쳐다보는 순간 화면 또한 그대로 멈춰 선다. ‘프리즈 프레임’ 기법이다. 로버트 레드포드와 폴 뉴먼이 주연한 ‘내일을 향해 쏴라’의 엔딩 역시 명장면으로 남아 있다. 완전히 포위된 상황에서 건물 밖으로 뛰쳐 나가는 순간 총탄 세례를 받을 게 분명한데도 둘은 굴하지 않고 바깥을 향해 몸을 던진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딱 정지시킨 화면 위로 타이틀백이 올라갈 때 영화는 평생 잊지 못할 여운을 객석에 건넨다. 이 정지화면 기법의 파괴력을 가장 적절히 활용한 이는 일본의 후카사쿠 긴지 감독이다. 야쿠자 이야기를 다룬 대표작 ‘의리 없는 전쟁’ 시리즈부터 유작 ‘배틀 로얄’에 이르기까지 그는 주로 폭력 신에 이 기법을 활용했다. 누군가 총격을 당하거나 흉기에 찔렸을 때처럼 참혹한 순간을 정지화면으로 길게 지속시켰던 후카사쿠 감독은 이후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 ‘킬 빌’을 비롯한 많은 작품들의 액션스타일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타란티노 감독은 ‘킬 빌’의 도입부에 ‘후카사쿠 긴지 감독에게 바침’이라는 자막을 넣기도 했다. 요즘은 TV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흔하게 쓰이는 기법이 되었다.

한 사람이 초조한 모습으로 앉아 있다. 커트가 바뀌면 카메라 위치는 그대로인데 그 사람은 서서 안절부절 못한다. 다음 커트엔 지쳤는지 아예 바닥에 드러누워 있다. 시간의 흐름을 압축적으로 보여주고자 할 때는 ‘점프 커트’ 기법을 쓴다. ‘여고괴담’에서 복도 저 끝에 있던 귀신이 서너 번 커트 만에 코앞까지 다가오던 장면이 좋은 예다. 장 뤽 고다르 감독이 ‘네 멋대로 해라’(1960)를 통해 처음 소개했을 때 그 파장은 엄청난 것이었지만 이 역시 지금은 보편적인 연출 기법으로 분류된다.

일본의 거장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도 자신만의 연출 스타일을 고집했다. 쫓고 쫓기는 긴박한 상황에서 그의 카메라는 뛰어가는 인물과 같은 속도로 나란히 달린다. ‘수평 트래킹’ 기법이다. ‘라쇼몽’이나 ‘7인의 사무라이’ 등 그의 시대극에서 이 박진감 넘치는 쇼트를 자주 만날 수 있다. 그를 존경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쥬라기 공원’을 비롯한 다수의 영화에서 이를 사용했다. 봉준호 감독도 ‘괴물’에서 일가족이 괴물 추적에 나서는 장면을 통해 오마주를 선사했다.

오즈 야스지로 감독은 전매특허로 낮은 눈높이의 화면구도인 ‘다다미 쇼트’와 후대 연출가들에게 영감을 준 ‘180도 커트 화면’ 기법을 남겼다.

김신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