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2015 신춘문예] 선긋기 - 이은희

신춘문예(소설) 당선작
이사 오고 처음으로 반상회에 참석했던 날, 엄마는 나를 데리고 동 대표의 집으로 갔다.… 사람들은 음식물 쓰레기를 창밖으로 던지는 주민에 관한 회의를 했다. 엘레베이터에는 이미 한참 전부터 경고문이 붙어있었다. ‘베란다 밖으로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는 주민을 목격하신 분은 경비실로 신고 바랍니다’라는 글귀가 붓펜으로 적혀 있었는데 볼 때마다 감탄이 나올 정도로 명필이었다. 다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린 것이 자기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려는 것처럼 ‘더럽잖아요’, ‘범인이 누굴까요’, ‘그거 때문에 고양이 들어와요’라고 서둘러 말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사람은 13층 아저씨였는데 사람들은 괜히 의심하는 표정으로 아저씨를 바라보았다.

그림= 박종성 화가
새 아파트가 아니었다.

엄마는 우리가 새 아파트로 이사 갈 거라고 말해왔다. 그 말은 알고 보니 새로 살게 될 집이 아파트라는 뜻이었다. 도시고속도로 바로 옆, 지은 지 삼십 년 된 여덟 동짜리 새 아파트 뒤쪽은 달동네였다. 나는 아파트 단지 인근이 영화에서 본 할렘 같다고 말했다가 엄마를 언짢게 했다. 우리 집 베란다에서 내려다보면 을씨년스러운 동산과 거기에 납작 붙은 빈집들이 훤히 보였다.

시에서 도시미화 사업을 한다더니 정말로 동네 곳곳에 원색의 그림들이 있었다. 금 간 담벼락을 뚫고 병아리가 나오려 하는 모습이라든가 콩나무가 블록을 쪼개고 자라나 비스듬한 전봇대를 휘감는 장면이 그려져 있었다. 피아노 건반이 그려진 계단 너머 언덕길에 무지개가 칠해져 있고, 무지개 너머에는 부수다 만 빈집들과 ‘생존권을 보장하라’라는 붉은 글귀들이 있었다. 그것에 관해 이야기했다가 엄마에게 아주 혼이 났다. 절대로 그곳에 가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

이사를 오자마자 엄마는 예민해졌다. 동 대표가 은근히 텃세를 놓는다며 불만스러워했다. 이웃집 사람들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앞집 사람은 쓰레기봉투를 현관문 앞에 내놓는 습관이 있었는데 때론 거기에서 액체가 흘렀다. ‘저 사람들 왜 저러는 거야, 쓰레기 국물이 흐르잖아, 쓰레기 국물이’ 라고 엄마가 신경질을 내서 나는 밥을 몇 숟갈 못 먹었다. 국그릇을 보자마자 메스꺼웠다.

위액이 울컥거리는 것을 느끼며 버스를 탔다. 가방을 열고 버스카드를 꺼냈을 때 생리대가 쏟아져버렸다. 나는 구둣발들 사이에 쪼그리고 앉아 생리대를 전부 주웠다. 총 일곱 개를 가지고 나왔는데 어찌된 건지 한 개가 보이지 않았다. 먼지를 털어 챙기는데 마음이 급했다. 누군가가 ‘학생, 여기’ 라고 말해서 돌아보니 생리대 한 개와 내가 담배를 보관하는 주머니가 떨어져있었다. 전부 집어넣고 일어섰을 때 기묘한 표정의 아저씨들과 눈이 마주쳤다. 얼굴 한가운데에 홍조가 몰린 듯도 하고 뭔가 냄새를 느끼기라도 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등굣길을 잊기 위해 나는 그림에 집중했다. 오전 아홉시 이십분의 빛을 놓치면 안 되었다. 아홉시 이십분에서 오십분까지의 빛은 형태의 가장자리를 넓고 투명하게 만드는데, 서서히 엷어지다가 투명해지는 그 지점을 자연스럽게 그려내는 것이 내 목표였다. 커튼 틈으로 들어온 직선의 빛이 선생님의 머릿결과 귓불, 어깨와 팔에 부딪혀 곡선으로 튕겨 나가는 장면을 기억해 두었다. 가르마에서 반사되는 빛은 아주 투명하지만 머리칼의 경계 때문에 그리는 것에 한계가 있었다. 가장 눈부시고 투명한 빛은 불룩한 옆구리에서 반사되는 빛이었는데 그게 참 안타까웠다.

쓸개즙 같은 국을 먹고 온 것이 문제였을까, 전부 엉망이었다. 나는 몰래 그리던 그림을 빼앗겼다. 아침부터 짜증낼 작정으로 내 곁에 다가왔던 선생님은 그림을 보고 잠시 말을 잃더니 가져가버렸다. 칠판에 적힌 유리수 지수 문제를 전부 그렸기 때문에 혼내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아마도 빛에 감동한 듯한 표정이었다. 분필 글씨의 질감을 내기 위해서 지우개질을 한 것이 문제였다. 힘을 뺀 채 슬쩍 밀다가 가장자리에서 문질러버려야 투명함이 표현되는 건데, 마침 그걸 할 때의 팔 동작을 들키고 말았다. 수업이 끝나고 반 아이들은 왜 문제까지 다 그린 거냐고 내게 물었다. 문제를 푼 것이 아니라 그린 것일 뿐인데도 보지도 못한 그림에 대해 호들갑이었다. ‘그거야 뭐, 유리수 지수니까’ 라고 대답했는데 누가 알아들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금 간 담벼락에는 비어져 나온 팔다리를 그리는 것이 더 나을 뻔했다. 콩 덩굴 그림 같은 것보다 멍든 팔이 블록을 깨고 나와 전봇대를 부여잡는 것이 훨씬 어울릴 것 같았다. 엄마가 가지 말라고 했어도 나는 그 동네에 자주 갔다. 몰래 담배 피우기에 적당한 곳이 있었고 유치한 그림들도 볼 수 있었다. 내가 자주 찾는 장소는 꽃이 그려진 노란 담벼락과 파랑새가 그려진 하얀 담벼락 사이였는데 한 사람이 겨우 통과할 정도의 좁은 곳이었다. 동네는 지나치게 조용했다. 서늘한 것이 등덜미를 훑는 긴장 속에 쪼그리고 앉아 나는 담배를 피웠다. 다 피우고 나면 어느새 긴장이 가시고 쓸쓸한 위안이 찾아왔다. 그 느낌에 알 수 없이 가슴이 아파지기도 했다.

그 장소에는 가끔 고양이가 나타났다. 듬성한 털이 더러운 삼색고양이였는데 왼쪽 입가의 큰 점을 비집고 수염이 나 있었다. 노란 칼눈으로 훔쳐보는 모습이 기분 나빴다. 날 우습게 여기는지 도망가지도 않았고 입을 벌리고 얄미운 소리로 울었다. 고양이에게 주려고 가방에 참치 캔을 넣어 다니기 시작했다. 엄마에겐 학교 급식이 맛이 없어서 참치를 가져다 먹는다고 했다. 그랬더니 엄마는 고추장맛 참치 캔을 사다 놓았다. 나는 가게에 가서 고추장맛 참치를 보통 참치로 바꾼 뒤 고양이에게 주었다. 노란 담장과 하얀 담장 사이에 서서 나는 못생긴 고양이가 참치 먹는 장면을 훔쳐보았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빈 캔이 매번 없어진다는 점이었다. 나와 고양이 말고는 좁은 틈에 아무도 들어가지 않을 터였다. 고양이가 먹고 난 캔은 매번 사라지고 없었다. 내가 버린 담배꽁초도 누군가가 치우는 것 같아서 신경이 쓰였다. 오래지 않아 나는 한 할머니가 그 캔을 가져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걸음을 뗄 적마다 입술에 힘을 주고 무릎을 짚는 할머니였다. 할머니가 큰 비닐봉지를 이끌고 무지개언덕 너머로 사라지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시끄러운 비닐봉지 안에는 페트병과 콜라 캔 같은 것들, 그리고 내가 뜯은 게 분명한 참치 캔이 들어있었다. 우리 아파트 후문에서도 그 할머니를 본 적이 있었다. 약간 비가 온 터라 안개가 차갑던 저녁이었다. 낙엽을 담은 포대 위에 누런 액체가 든 페트병이 버려져 있었는데, 복잡한 꽃무늬의 솜바지를 입은 할머니가 그걸 만지작거리는 것을 보았다. 뭔가 고민하던 할머니는 페트병 마개를 열어 안에 든 액체를 하수구에 쏟더니 리어카 안에 챙겨 넣었다. 리어카에는 페트병과 캔 몇 개, 플라스틱 요구르트 병을 모아놓은 뭉치가 들어있었다. 할머니는 그 리어카를 끌고 젖은 잎이 깔린 길을 천천히 걸어갔다.

나는 어쩐지 외로운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저녁의 풍경을 수채 색연필로 그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물을 발라 진해진 노란색으로 은행잎들을 그리고 싶었다. 그리고 먼바다처럼 아득하게 안개를 그리고 싶었다. 그러려면 울트라마린과 다크브라운을 섞어 은회색이 천천히 번지도록 해두고, 안개가 가장 짙은 부분에는 검정을 섞어 경계를 만들다가 희게 비워두면 될 것 같았다.

그런데 몰래 그려야 한다는 것이 문제였다. 엄마는 내가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디자인전공을 할 거라면 모를까 미술학원에 보내지 않겠다고 했다. 내가 생각해도 내게 투자하는 것보다는 아파트에 투자하는 것이 분명 나은 일이었다. 우리 엄마 아빠에겐 빚도 많았다. 십 년이나 십오 년 정도는 있어야 아파트의 진짜 주인이 될 수 있었다. 물론 그 안에 이 아파트를 부수고 새로 짓는 일이 일어날 거고 그때는 어쩌면 엄마 아빠가 앉은 채 돈을 버는 일이 생겨날지도 몰랐다. 그래보았자 빌린 돈을 갚는 데 쓰겠지만, 누가 보더라도 서양화 전공보다는 그게 나은 일이었다.


비밀이 하나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였다.

아빠가 사둔 담배를 훔쳤다. 처음에는 몇 번만 피워볼 생각이었지만 결국 내내 담배를 피우게 되었다. 아무도 눈치채지 않아서였다. 기습 소지품 검사를 했을 때에 담임은 내 물건을 유심히 보지도 않았다. 검은 주머니에 담은 16색 파스텔 상자 속에 담배가 있는데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파스텔 도막으로 다글다글한 상자가 색색의 가루로 덮여서인지, 아니면 몸무게 32킬로밖에 안 나가는 애는 담배를 안 피울 거라고 생각해서인지 알 수 없었다. 한번은 담배를 필통 속에 넣어두었는데 그래도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다. 사실 한 사람은 알긴 할 테지만 그 사람이 누군지를 알아낼 수가 없었다. 그때 마침 우리 반이 체육 수업 중이었고 누군가가 빈 교실에 들어와 도둑질을 했다. 나는 그날 오렌지색 펜과 4B연필을 잃어버렸지만 담배만은 멀쩡히 남아 있었다.

우리 부모는 내 키가 작다는 것을 그리 걱정하지 않는다. 언젠가는 자랄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내가 이미 고등학생이라는 사실도 자주 잊어버리는 것 같다. 내게 아동 사이즈의 옷을 사 입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사 오고 처음으로 반상회에 참석했던 날, 엄마는 나를 데리고 동 대표의 집으로 갔다. 외동딸이라고 나를 소개했을 때 동 대표 아줌마가 이렇게 말했다. ‘어머, 고등학생인데도 아직 애기 같네.’ 나는 그 말을 듣고 어쩔 줄 몰랐다. 우리 엄마는 ‘그렇죠, 일곱 살에 학교 들어가서 아직 어려요’라고 대답했는데 어쩐 일인지 자랑스럽기라도 한 기색이었다. 덩치로 따지면 나보다 큰 아이도 있었지만 반상회에 따라온 아이들은 전부 초등학생이어서 나는 어디에든 숨고 싶었다.

사람들은 음식물 쓰레기를 창밖으로 던지는 주민에 관한 회의를 했다. 엘리베이터에는 이미 한참 전부터 경고문이 붙어있었다. ‘베란다 밖으로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는 주민을 목격하신 분은 경비실로 신고 바랍니다’라는 글귀가 붓펜으로 적혀 있었는데 볼 때마다 감탄이 나올 정도로 명필이었다. 다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린 것이 자기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려는 것처럼 ‘더럽잖아요’, ‘범인이 누굴까요’, ‘그거 때문에 고양이 들어와요’라고 서둘러 말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사람은 13층 아저씨였는데 사람들은 괜히 의심하는 표정으로 아저씨를 바라보았다. 우리 엄마는 좋은 옷을 꺼내 입고 결혼할 때 받았다는 목걸이를 하고 있었다. 마스카라가 칠해진 속눈썹이 벌레의 다리처럼 보였다. ‘그러게요, 누가 놀러왔다가 보기라도 하면 당장 품위 없어 보이잖아요’라고 했는데 엄마에게는 아무도 맞장구치지 않았다. 엄마를 향해 어떤 아줌마가 난데없이 말하길 ‘우리들은 여기에 십년 넘게 살았어요’라고 했다. 눈을 크게 뜨고 눈동자를 아래위로 굴리는 모습이 마치 갓 이사 온 우리 집에 융자가 많이 끼어있는 것을 알기라도 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음식물 쓰레기에 관한 이야기는 별다른 답을 찾지 못한 채 다른 화제로 넘어갔다. 아파트 안에 들어와서 폐품을 집어가는 할머니가 있다고 했다. 재활용품 수거함에서 돈 될 만한 쓰레기들을 골라 간다는 것이었다. 경비아저씨들이 매번 내쫓았는데도 그 할머니가 자주 눈에 띈다고 했다. 혹시 참치 할머니인가? 할머니의 인상착의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까봐 나는 귀를 기울였다. 어떤 아줌마가 그 할머니를 흉보고 있었다. 인근의 다른 노인들은 거리를 돌며 폐지를 모으는데 그 할머니는 약아서 아파트 주민들이 모아놓은 폐품을 공짜로 집어간다는 것이었다. 내내 말이 없던 13층 아저씨가 입을 열길 ‘아, 그거 어차피 버리는 건데 누가 가져가면 어때서 그래요’라고 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일제히 아저씨에게 말했다.

“아니, 그런 사람이 폐품 말고 또 뭘 훔쳐갈지 어떻게 알아요?”

사람들이 중구난방으로 떠들었다. 경비실에서 맡아준 택배가 없어진 게 한두 번이 아니에요, 그리고 생각해봐요, 우리한텐 물건을 마음대로 버릴 권리가 있잖아요, 그거 다 관리비에 들어가는 거예요. 그리고 우리가 버리는 걸로 누가 왜 괜히 먹고살아요? 우리 엄마에게 은근한 견제의 눈길을 보내던 아랫집 아줌마는 이렇게 말했다.

“지난번에 그 할머니가 구루마로 우리 차 긁고 갔어요. 다음에 그 할머니 눈에 띄기만 해봐요, 나 가만 안 있을 거예요. 그 할머니도 당해봐야 알지.”

동 대표 아줌마는 혀를 찼다.

“내가 사실은, 그 할머니를 내내 챙겨주고 있었어. 우리 집에서 뭐 생기면 나는 모아다가 그 할머니 갖다 줬다고. 아파트 안에 들어오지 말라고 내가 미리 그렇게 생각해주고 있었는데 기어코…….”

동 대표 아줌마는 목소리를 낮추더니 소곤거렸다.

“그 할머니가 부동산 몇 채를 가진 노인네라는 얘기가 있어. 그런데도 악착같이 폐지 줍고 구청에서 복지비 다 타먹고 아주 지독한 노인네라고.”

누군가가 자기도 들었다며 맞장구를 쳤다. 50대 사업가 아들이 벤츠 타고 나타나서 이런 일 그만 좀 하시라고 말리더래요, 라고 말했다. 취미로 운동 삼아 그거 하는 거겠지 뭐, 우리한테 피해 안 주면서 하면 누가 뭐래? 우리한테 피해를 주니까……. 나는 귓전을 때리는 말들 때문에 어지러웠다. 입 안으로 위액이 약간 넘어왔다. 우리 엄마는 듣고만 있었다. 집에 가고 싶다고 말했지만 엄마는 조금만 참으라고 말했다. 


그림= 박종성 화가
반상회에서 돌아와 결국 엄마와 싸웠다. 토할 것 같다고 했는데 엄마가 짜증을 냈다. ‘계란말이 해주면 먹는다고 했잖아!’라면서 식탁에 억지로 앉혔다. 팽이버섯을 넣고 만들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보건 시간에 기생충에 관해 배운 뒤로는 밥상에서 팽이버섯을 보고 싶지 않아졌다. 촘촘히 썰린 계란말이에 가지런히 들어찬 팽이버섯의 단면은 거기에 흰 알이 수도 없이 모여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생선 내장 속에 들었다는 회충이나 사람 배 속에서 꺼낸 십이지장충 사진을 본 것이 생각나서 그걸 먹느니 죽고 싶었다. 눈물을 떨어뜨리고 있는데 엄마가 소리를 질렀다. ‘너 말 안 들을 거면 나가, 들어오지 마!’ 그렇게 말하고는 엄마가 안방으로 들어가 거칠게 문을 닫아버렸다. 나는 잠시 흐느껴 울다가 담배를 챙겨 들고 밖으로 나왔다.

해가 진 그 동네가 무서웠지만 나는 노란 담벼락과 하얀 담벼락 사이를 찾아갔다. 노란 담에 그려진 꽃은 물뿌리개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을 맞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보니 빨간 꽃이 섬뜩해보였다. 꼬리뼈까지 서늘해지는 기분에 쭈뼛거리며 나는 좁은 틈으로 걸어 들어갔다. 어둠에 눈이 익자 비로소 그곳이 익숙해 보였다. 그리고 담배를 붙여 막 피우려던 찰나, 그 안을 들여다보는 참치 할머니와 마주쳤다.

나는 벌떡 일어났다. 할머니도 놀란 기색이었다. 할머니와 내가 마주 본 채로 몇 초간 얼어붙은 정적이 흘렀다. 할머니는 한쪽 팔로 무릎을 짚고 리어카를 세우더니 나를 향해 손을 저었다. 그건 하던 일을 계속하라는 의미인지, 일어서지 말고 앉으라는 말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담배를 떨어뜨리고 얼른 비벼 껐다. 할머니는 끄응, 하는 소리를 내고 돌아서서는 리어카를 끌고 가버렸다. 어둠 속에서 할머니가 무지개언덕을 오르는 것을 보았다. 그 뒷모습에는 어떤 취미도 없어보였다.

나는 여드름을 그린 적이 있다.

내 앞에 앉은 아이의 목에 솟은 여드름이 검지 손톱 크기로 자라나 검붉은색으로 익어가는 것을 스케치했다. 마지막 날에는 뾰루지가 터져서 셔츠 깃에 묻었는데 피 섞인 고름 방울이 맺힌 것도 그려 두었다. 출산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았던 가정 수업 시간이었다. 선생님이 감상소감을 묻자 장애인 아이가 ‘엄마께 효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내 앞의 여드름 여자애는 작은 소리로 ‘쟤네 엄마는 진짜 열 받았겠다. 낳고 보니까 쟤였던 거잖아’라고 말했다. 다큐멘터리에서 소처럼 울부짖던 산모는 출산이 끝난 소감을 묻자 ‘애기 나올 때에 굉장히 시원해요. 변비 있다가 확 뚫리는 느낌?’이라고 대답해버려서 나는 어떤 비밀을 알게 된 것만 같았다. 나는 그날을 기록해두고 싶어서 익어가는 여드름을 그렸다. 그리고 그런 것은 절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내 알게 되었다.

나는 그날의 기분을 그리는 상상을 했다. 닭집에서 버리는 폐식용유에다 개똥 같은 걸 칼로 섞어서 길바닥에 문지른다. 동그라미도 아니고 곡선도 아니고 글씨도 아닌 것이 끊겼다가 이어져서 꿈틀거리게끔 그냥 마구 발라놓는다. 그런 걸 보고 싶은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똥처럼 세상에 태어난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더럽고 두려운 기분이 들었다. 그걸 그려서 기분이 나아진다면 나는 얼마든지 그렸을 것이다.

베란다 밖으로 던져진 음식물을 그린 적이 있다.

나는 그것이 더럽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그릇에 담겨 있지 않을 뿐이지 그건 누가 차려놓은 아침밥 같은 것들이었다. 학교 가는 아침에 항상 그것들을 볼 수 있었다. 콩과 조가 섞인 쌀밥, 불고기, 멸치볶음, 총각김치, 미역국이었을 것 같은 흥건한 국물이 뿌려져 있었다. 어떤 날에는 계란 프라이, 김치볶음, 스팸구이와 김, 근대국이었을 것 같은 국물이 떨어져 있었고 부침개나 콩장, 깎은 사과와 김밥, 만두도 떨어져 있었다.

새벽까지 잠이 오지 않던 어느 일요일, 엄마 아빠가 곤히 잠든 것을 확인하고 동도 트기 전에 집 밖으로 나왔다. 얼른 담배를 피우고 다시 들어갈 생각이었다. 아파트 현관에서 막 나오려던 찰나 눈앞에 찰밥덩이가 떨어지는 것을 보게 되었다. 뒤이어 계란찜과 잡채가 떨어지더니 굴비 두 마리가 떨어져 내렸다. 위를 살피자 7층에서 마침 된장국을 확 쏟아붓는 중이던 사람을 볼 수 있었다. 나를 발견한 7층의 누군가는 당황한 듯 숨어버렸다. 


나는 각각 입을 ‘아’와 ‘으’로 벌리고 있는 굴비 두 마리를 그렸다. 굴비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와 굳은 모습과 자잘한 이빨들, ‘으’의 입모양을 한 굴비가 조금 더 탄 것까지 전부 그렸다. 몸통에 세 군데의 칼집이 난 것과 거기에 양념을 얹어놓은 것, 그리고 양념에 쪽파와 깨가 들었던 것까지 그렸기 때문에 누군가는 그것이 자기 굴비라는 것을 알아볼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엘리베이터에 그 그림을 붙여두었다. 하루도 지나지 않아 엄마가 그 그림을 떼어가지고 들어왔다. 엄마 손에 들린 굴비가 파스텔 가루를 날리며 펄럭거렸다. ‘이거 네가 그렸지? 왜 엘리베이터에 붙여놨어?’ 나는 먹고 싶어서 그렸다고 대답했다. 엄마는 별일 다 보겠다고 하더니 다음 날 굴비찌개를 끓였다. 퀴퀴한 국물 속에 잠긴 굴비가 나를 향해 혀를 내밀고 있었다. 엄마 아빠는 소주를 곁들여 찌개를 먹었다. 나는 탕 속에서 경악하던 굴비들 때문에 그날 밤 잠을 설쳤다.

7층 아줌마가 나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슈퍼마켓에서 고추장맛 참치를 보통 참치로 바꾸고 있을 때였다.

“얘, 너 지난번에 조기 구운 거 그려서 엘리베이터에 붙였던 애지?”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아줌마가 다가오더니 내게 말을 걸었다. 나는 아니라고 말하려 했지만 너무 놀라서 참치 캔을 떨어뜨렸다. 아줌마가 허리를 굽혀 캔을 주웠다. 아줌마의 뜨거운 손이 내 손을 스쳤다. 털을 전부 밀어버린 점투성이 돼지 같은 아줌마였다. 얼굴을 뒤덮은 기미 때문에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쳤다. 아줌마는 비굴한 표정으로 웃었다. 억지로 웃는 얼굴이 축축해 보였다.

“너는 학생이니까 모르겠지만 원래 객지 나간 식구 밥은 항상 따로 해놓는 거다. 그래야 타지 나가서도 밥 잘 얻어먹고 무사하고 그러는 거야. 요즘 사람들은 안 그러지만 옛날 사람들은 다 그렇게 식구 챙겼어.”

나는 주춤한 채 아줌마를 바라보았다. 아줌마의 입에서 젖은 해초 같은 것이 꾸역꾸역 기어 나오는 장면을 상상했다. 아줌마는 숨을 몰아쉬며 내게 한걸음 다가오더니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사실, 우리 애가 얼마 전에 저기에 갔어. 키도 크고 잘생기고 그럴 애가 아닌데 군대 가서…. 그 사고가 났어.”

아줌마는 턱을 치켜 하늘을 가리켰다. 당장 울 것처럼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이었다. 두려워져서 나는 자리를 피했다. 아줌마는 내 걸음을 뒤따라오며 계속 말을 이었다.

“아줌마 이상한 사람 아니야. 요 앞에서 부동산 해. 이 아파트에만 아줌마 집이 세 채야. 요 건너 삼성 아파트에도 집이 있고, 롯데캐슬에도 하나 있어. 거기 집은 복층이지. 내가 일을 너무 하느라 우리 애 외지 나갔는데도 밥을 안 챙겼어. 워낙 키가 커서 뭐 먹고 돌아서면 또 배고프다고 하는 애인데, 집 밖에서 잘 얻어는 먹고 있나 신경 썼어야 하는데, 내가 그걸 못했어.”

아줌마는 말을 하다 말고 눈가를 훔쳤다. ‘너 오빠가 얼마나 잘생겼는지 아니? 우리 아들이 장동건 조인성이보다도 잘생겼어. 네가 이사 온 지 얼마 안 돼서 우리 아들을 모르는 거야, 이 동네 여자애들은 우리 아들 다 알아…….’

아줌마는 숨을 헐떡이며 달동네 입구까지 나를 따라왔다. 나는 건반이 그려진 계단에 발을 올려놓다가 돌아섰다. 아줌마가 울고 있을까봐 일부러 얼굴을 보지 않았다.

“저, 지금 아줌마 처음 봐요.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나는 도, 미, 파, 솔, 시의 계단을 뛰어올라갔다. 그리고 콩나무를 지나 내 고양이가 기다리는 좁은 틈으로 갔다.


처음 이사 왔던 날, 나는 옥상까지 걸어 올라가 보았다. 15층 옥상에서 아래를 보고 싶었는데, 문이 잠겨 있을까봐 걱정했지만 쉽게 열렸다. 누군가 죽고 싶다면 여기에서 곧장 죽을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하며 옥상에서 내려왔다. 그 뒤로 다시는 거기에 가지 않았다. 혼자 있기에는 지나치게 넓고, 문이 너무 쉽게 열렸다.

어느 날 새벽, 아파트에 경찰이 왔다. 재활용품을 훔치는 중이던 할머니를 잡아갔다고 한다. 이상한 사람이 단지 내에 침입해서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 같다고 누가 신고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 일에 관해 이야기하는 엄마 아빠는 평소보다 힘없는 말투였다. 아파트 사람들은 이런가? 하는 아빠 목소리는 어딘지 자신 없게 들렸다. 캔이 딸그랑거리는 소리 때문에 신고가 들어왔다고 하는데, 할머니가 경찰을 따라가지 않으려고 해서 소란이 커졌다고 했다. 그거 훔치면 절도죄야? 엄마가 물었다. 아빠는 아니지, 라고 한 뒤 버린 건데, 라고 덧붙였지만 여전히 자신 없는 목소리였다. 나는 그날 아침 학교에 가다가 할머니의 리어카를 보았다. 재활용품 수거함 근처에 세워진 리어카 안에는 원래 뭐였는지 알 수 없는 긴 봉, 캔이 든 비닐봉지와 신문지가 담겨 있었다. 경비 아저씨가 그걸 끌고 가서 관리실 뒤쪽에 세워두는 것을 눈여겨봐 두었다. 하지만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에는 리어카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한참 동안 할머니도 보지 못했다.

엄마는 내게 왜 고추장맛 참치를 보통 참치로 바꿔 가느냐고 물었다. 슈퍼마켓 점원 아가씨가 그런 소리를 하더라고 했다. 나는 보통 참치가 더 맛있어서, 라고 대답했는데 엄마가 짜증을 냈다. 아니, 그럼 그냥 참치를 사달라고 하지 그걸 말을 못해? 그 말을 듣고 나서야 그러면 되는 일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학교 급식실에서 나는 때론 혼자 밥을 먹었다. 먹는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과 함께하는 것이 힘들었다. 아이들이 전부 먹어치우는 동안 나는 반의 반도 먹지 못했다. 때론 일부러 엎드려 자 버리고 밥을 굶었다. 입에서 침이 잘 안 나와서 삼키는 게 힘든데, 누구든 내가 음식 먹는 것을 답답하게 보았다. 어떤 아이는 내가 밥을 먹는 것을 한참 구경했다. 쟤 진짜 불쌍하게 먹지 않냐? 라고도 했고, 햄스터 같다, 라고도 했다. 숟가락을 잡으면 나는 오랜 시간을 들여 어렵사리 먹었다. 때론 내가 먹은 음식들이 잔뜩 부풀어 올라 배 속에서부터 나를 안아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때는 가끔이었고 주로 굴러떨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기 염소 대신 돌이 든 것도 모른 채 끊임없는 갈증을 느끼는 늑대처럼 나는 딱딱한 배를 안고 겨우 걸었다.

“아, 정말 날 왜 낳아가지고! 사람 귀찮게시리!”

그 말이 뭐가 그렇게 잘못되었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엄마는 내가 그렇게 말하면서 엄마를 노려보았다고 하는데, 그래서 너무 상처받았다며 아빠에게 하소연을 하고 있었다. 너 진짜 그따위로 말했어? 아빠가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뭘 사과하라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귀찮다는 말이 버릇없는 말도 아니고, 날 왜 낳았는지는 평소에 궁금해하던 것이어서 튀어나온 말인데 그렇게 나쁜 말인 것 같지는 않았다. 엄마는 상처받았다면서 세상이 무너지기라도 한 것처럼 주저앉아 울고, 계속 나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고 있었다. 미안하다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아빠가 말했다.

“지수 너, 사는 게 귀찮냐?”

나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아빠가 말을 이었다.

“너 어린 게 그런 소리 하면 정신이 이미 썩은 거다. 공부하는 학생 입에서 나올 말이 아니야.”

아빠는 마치 자기는 귀찮지 않기라도 한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자기들 멋대로 세상에 태어나게 하더니 말도 내 마음대로 못하게 한다. 이런 식일 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나는 그때에도 똥처럼 가만히 놓여 있는 게 정말 귀찮았다.


음식물은 계속 버려졌다. 푸릇한 콩이 섞인 밥, 참기름 냄새가 나는 명란젓도 있었고, 고구마튀김, 무생채, 아주 작은 게를 볶은 반찬이 버려져 있었다. 연근조림이랑 브로콜리 볶음을 봤을 때에는 한참 침을 삼키기까지 했다. 속에 시금치가 든 계란말이와 소스가 묻은 돈까스, 오징어채를 빨갛게 무친 것, 두부와 다시마가 든 국이 버려진 날도 있었다. 어떤 날 아침엔 김치 넣고 끓인 콩비지찌개, 꽈리고추와 함께 볶은 꿀색 멸치들이 떨어져 있었다. 나는 또 어떤 반찬을 보게 될지 기대했다.

7층 아줌마의 비밀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엘리베이터에 붙은 경고문이 낡아서 떨어지자 ‘음식물 쓰레기 무단 투기 엄금’이라고 적힌 경고문이 다시 붙었다. ‘엄금’을 빨간색 매직으로 쓴 글씨였는데 글자 위에 불이라도 붙인 것처럼 화가 많이 난 필체였다. 7층 아줌마가 고등어조림을 했던 날, 나는 그 냄새가 달콤하다고 생각했다. 생선조림에 든 무에다 밥을 비벼 먹고 싶다고 했더니 엄마가 양미리라는 생선을 사왔다. 뱀 토막 같은 모양도 싫었지만 사람 이름이 붙여진 게 무섭고 싫었다. 이거 양미리라는 거야, 하는 목소리를 듣자 지난번에 임연수라는 생선을 먹으라고 했을 때처럼 기분이 나빠졌다.

나는 좁은 틈에 자주 갔다. 날이 추워지면서 고양이가 보이지 않았다. 전날 열어둔 참치 캔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나는 새 참치 캔을 따서 놓아두고는 담배를 피웠다. 떠난 걸까, 설마 나쁜 일을 당한 걸까? 하도 못생긴 고양이여서 누가 이유 없이 괴롭힐 수도 있었다. 나는 누가 고양이 꼬리에 불을 붙였다는 뉴스나, 높은 곳에서 던져버렸다는 뉴스들을 생각했다. 못생긴 고양이가 다시는 여기에 오지 않을까봐 두려웠다. 그래도 당분간은 참치 캔을 놓아두고 기다려볼 생각이었다. 담배를 다 피우고 일어나려는 순간 어지러워 벽을 짚었다. 눈앞이 노랗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다시 주저앉았다가 천천히 일어나는데 담과 담 사이에 할머니가 서서 나를 보고 있었다.

“고양이 찾나?”

할머니가 물었다. 나는 당황해서 대답을 못했다. 할머니가 말했다.

“구청에서 사람들이 와가, 고양이 다 잡아갔다.”

할머니는 나를 흘끗 보더니 덧붙였다.

“그 사람들이 고양이 한데 잡아갔다가 한데 풀어놓더라. 며칠 있으면 다시 보일끼다.”

할머니의 리어카는 무사했다. 할머니는 리어카에 매달아놓은 봉지를 뒤적였다. 그리고 이리 와봐라, 이리 나와 봐라, 하고 내게 손짓했다. 나는 주춤거리고 다가갔다. 할머니는 토스트를 꺼냈다. 흐뭇한 눈으로 웃고 있었다.

“이거 따뜻하니까 갈라 먹자.”

나는 입에서 담배 냄새가 날까봐 가만히 있었다. 할머니가 나눠주는 대로 토스트 절반을 받아 먹었다. 우리 아파트 후문 앞 토스트집에서 쓰는 포장지였다. 마가린에 지진 식빵 사이에 계란부침이 들어있었다. 기름기가 달콤하고 따뜻했다. 나는 순식간에 먹어버렸는데 할머니는 아직도 빵을 들고 있었다. 더 먹을 거냐고 묻기에 고개를 저었더니 그제야 할머니도 토스트를 먹기 시작했다.

“참말 맛있다. 이 아줌마가 빵을 이래 잘 굽는다. 손님 없을 때 내 보면은 얼른 구워서 한나씩 준다. 서울 사람들이 이래 착해, 서울 사람들은 이래 잘 도와줘.”

토스트를 다 먹은 뒤 할머니는 좁은 틈에 들어가 참치 캔을 들고 나왔다. 참치 줄 때에는 깡통째 주지 마라, 고양이 입 다친다, 라고 말하며 할머니가 물끄러미 나를 보았다.

“어린 몸에 불을 때고 그라면 안 된다 아이가, 키 커야제.”

나는 무안해서 고개를 숙여버렸다. 할머니는 지그시 웃는 기색이었다. 리어카에는 페트병 몇 개와 참치 캔, 그리고 토스트집 아줌마가 줬을 것 같은 박스 서너 개가 실려 있었다. 할머니는 그걸 끌고 언덕 저편으로 갔다.


그림= 박종성 화가
7층 아줌마가 드디어 들키고 말았다.

매일 던져지는 음식물 쓰레기 때문에 미칠 것 같다고 하던 우리 동 경비 아저씨는 새벽녘에 추위를 참으며 잠복했다. 벤치 뒤에 숨어 꼼짝도 않고 있던 새벽 6시경, 7층 아줌마가 소리도 없이 베란다를 열고 음식을 던지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팥을 섞은 밥과 오이지무침, 손바닥만 한 파래부침개, 굴이 들어간 깍두기를 던지고 소고기무국을 쏟아부은 뒤 창문을 닫는 것을 전부 보았다. 경비 아저씨는 아무도 모르게 7층 아줌마에게만 따로 경고를 할 생각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7층 아줌마가 생사람 잡는다며 삿대질을 해서 큰 시비가 붙었다. 경비가 제 할 일을 안 하고 쓰레기 버리는 사람을 못 잡아내자 자기에게 누명을 씌웠다는 것이었다. 몸을 떨고 눈물을 흘리며 7층 아줌마가 소리를 질렀다. 억울해! 난 억울하단 말이야! 마치 누가 때리기라도 한 것처럼 비명을 질러서 아파트 전체가 흔들렸다. 사과하라며 경비 아저씨를 몰아세우는데, 동 대표 아줌마가 이제 좀 그만들 하시라고 말려도 소용이 없었다. 7층 아줌마는 억울하다는 말만 하면서 악을 쓰고 울었다. 아무도 아줌마를 달래지 않았고 다들 시선을 돌렸다. 동 대표 아줌마가 말하길, 그냥 아저씨가 잘못 본 것 같다고 사과하세요, 라고 했는데 경비 아저씨는 그럴 수 없다고 했다.

그때 7층 아줌마와 눈이 마주쳤다. 아저씨를 무릎 꿇리고 사과를 받아내고 잘라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난리치던 7층 아줌마는 나를 보자 갑자기 정신이 든 것 같았다. 낫살도 얼마 안 됐는데 벌써 치매 왔냐, 낯짝도 두껍다, 천벌 받을 줄 알아라, 온갖 말을 해대며 천천히 기세를 접더니 이렇게 말했다.

“에그……. 지 잘못 인정을 하지 끝까지 우기긴. 하늘이 알고 땅이 알아! 평생 경비나 하고 살아라!”

그렇게 말한 뒤 7층 아줌마는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다. 어쩔 줄 몰라하는 경비 아저씨를 향해 사람들이 한마디씩 했다. 아저씨, 고생하셨어요, 오늘 소주 한 잔 하셔야겠네요, 잊어버리세요, 이 지경으로 했으면 이제 음식물 쓰레기 보는 일은 없겠네요, 라는 말들 끝에 누군가가 말했다. “근데 앞으로도 버리면 그럼, 범인은 저 아줌마 아니라는 거잖아?” 그 말에 다들 잠잠해졌다. 뭔가 곤란한 문제였다. 나는 7층 아줌마가 앞으로도 계속 음식을 던질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흑미밥을 그려서 엘리베이터에 붙여두었다. 밥공기에서 뒤집은 모양 그대로 동그맣게 떨어진 밥과 문어 모양으로 볶인 소시지를 일러스트로 그렸다. 문어 모양의 소시지가 피망 조각들 사이를 누비며 두리번거리고 보라색 밥덩이를 찔러보는 것을 그렸다. 보라색과 분홍색 색연필은 쓸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색감 연습으로 괜찮은 그림이었다. 어떤 문어 소시지는 하늘을 향해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모습으로 그려두었는데, 7층 아줌마를 위해서 한 일이었다.

쉽지 않은 것은 직선으로만 완성하는 그림이었다. 나는 할머니를 위한 그림을 그려보고 싶었지만 아주 신중해야 했다. 최초의 선을 어디에 어떻게 긋느냐에 따라 그림이 결정될 터였다. 그래서 나는 꽤 오랫동안 첫 번째 선을 긋는 것에 관해 생각하며 지냈다.

색은 총 다섯 가지를 표현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흰색과 검은색, 흰색의 검은 부분과 검은색의 흰 부분, 그리고 그림자의 색. 귀퉁이에서부터 그을 것인지 한가운데에서부터 그을 것인지 마음속으로 시작해보았다가 매번 지웠다. 거친 선으로 그릴지 날카로운 선으로 그릴지부터 결정해야 했다. 촉이 가느다란 검정 펜을 만지작거리기만 할 뿐 시작을 못하던 어느 아침에 첫눈이 내렸다. 나는 할머니의 리어카를 오랜만에 보았다. 리어카 안의 박스 몇 장이 눈에 젖어 있었다.

그날 나는 아주 천천히 선을 그어 그림을 그렸다. 여러 번 덧대어 긋자 눈을 맞은 듯 음영이 지고 한숨이 나오는 선들이 생겨났다.

나는 그림의 바닥부터 맨 위까지 선이 쌓이게 놓아두었다. 결이 되고 면이 되도록 빈 종이에 선을 모으는 기분이었다. 신기하게도 어떤 선은 포동하고 뽀얀 빛을 지녔다. 손끝부터 어깨를 지나 반대편 손끝까지인 것처럼 어떤 것은 벌린 팔을 닮아 보였다. 우리 반 아이들은 그림을 보고 의아해했다. 너 왜 선긋기 해? 미술 처음 하는 사람이나 하는 거잖아? 나는 이렇게 가득 모아서 주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대답했다. 누군가 알아들었을지 모르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