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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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의 일상 톡톡] 늙어서도 편히 못 쉬는 대한민국

"내 늙음은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한숨만 켜켜이 쌓이는 '서글픈 노년'

#1. 지난 2011년 3월 살던 아파트를 담보로 은행에서 2억5000만원을 빌려 삼겹살 음식점을 차린 박모(50)씨는 사업 초기엔 가게 임대료와 대출 이자 등 고정비용을 제하고도 한 달에 250만원가량 수익을 올렸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주변에 고깃집들이 속속 문을 열기 시작한 데다 경기 침체 장기화로 매출이 빠르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지난해 초 가족 같던 종업원 3명을 내보낸 뒤, 건강이 좋지 않아 집에서 쉬던 부인이 빈 자리를 메우며 가게 일을 돕기 시작했다. 그러나 역부족이었다. 박씨는 근근이 음식점 문을 열어놓다가 결국 지난해 12월 더 사업을 꾸려나가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에 문을 닫고 대출금을 갚았다. 박씨는 “집이 경매 등으로 넘어가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라며 “앞으로 무엇을 해야 먹고 살 수 있을지 솔직히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2. 인천에서 자영업을 하는 이모(49)씨는 국민연금에 10년8개월(128개월)째 가입 중이다. 그는 한 달에 168만원을 벌어 15만1200원을 연금보험료로 낸다. 63세가 돼 연금을 받으려면 앞으로 60세(126개월)까지 보험료를 더 내야 한다. 그렇게 해 받는 예상연금은 월 45만8000원 가량이다. 이씨는 “이것으로 노후를 대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하소연한다.

#3. 유명 대기업에 다니던 김모(57)씨는 중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를 만나 정리해고를 당했다. 특별한 기술이 없는 사무직이었던 김씨는 중국 음식점을 열었다 경영난으로 폐업했다. 김씨는 “훈제오리와 삼겹살·떡갈비 등 음식점을 3번이나 창업했지만 줄줄이 문을 닫았다”며 “현재 택시기사로 일하며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다 결국 대출을 못 갚아 집이 경매로 넘어갔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4. 외국계 패션회사에 다니다 외국 유명 헤어 디자이너의 삶을 동경해 퇴직하고 미용실을 차린 최모(52)씨의 삶도 고단하긴 마찬가지. 한때 분점까지 생기며 잘 나갔던 미용실은 다른 대형 프랜차이즈 미용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했다. 최씨는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벽지 바르는 일용직으로 전전하고 있다”며 “이마저도 건설경기 한파에 고정적인 수입조차 기대할 수 없는 처지”라고 울먹였다.

◆ 기업 경기 매서운 ‘칼바람’…명퇴자 결국 자영업으로 내몰려

기업의 체감경기가 바닥을 모르고 고꾸라지고 있다. 문제는 앞으로 전망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 새해 미국 등 선진국 중심으로 세계 경제가 반등할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우리 기업들의 주요 수출지역인 신흥국에는 경기 회복의 온기가 전해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주요 대기업들이 명예퇴직 등을 확대하면서 회사를 그만둔 직장인들이 자영업으로 몰려 갈수록 이 시장도 경쟁이 치열해질 전망이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한국은행의 지난해 12월 제조업 업황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73으로 11월보다 2포인트 떨어졌다. BSI는 기업이 느끼는 경기 상황을 지수화한 것으로, 지수가 100을 밑돌면 경기를 나쁘게 보는 기업이 좋게 보는 기업보다 많다는 뜻이고, 100을 넘으면 그 반대를 의미한다. 기업 규모별로는 대기업(78→77)과 중소기업(71→69) 모두 떨어졌다. 조사에 참여한 업체들이 꼽은 경영애로 사항 중 ‘내수 부진’은 11월 24.1%에서 12월 25.5%로 응답률이 높아지고 ‘경쟁 심화’(11.6→13.1%)도 응답 비중이 커졌다.

올해 국내 기업들의 체감경기는 실적 부진, 경제 불확실성 지속 등의 영향으로 더 악화될 것으로 전망됐다. 대한상공회의소는 2377개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올 1분기 기업경기전망지수를 조사한 결과 83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지난해 4분기(97) 대비 14포인트 하락한 것으로, 2013년 1분기(69)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기업경기전망지수는 지난해 2분기(111) 이후 세 분기 연속 하락하고 있다. 올 1분기 경기전망지수는 대·중소기업, 수출·내수기업 할 것 없이 모두 하락했다. 대기업의 경기 전망치는 81로 지난해 4분기에 비해 19포인트, 중소기업은 84로 12포인트 내려갔다. 내수기업은 지난해 4분기 97에서 81로, 수출기업은 97에서 91로 각각 16포인트와 6포인트 하락했다. 기업들은 올 1분기 경영 애로 요인으로 내수 및 수출 등 수요 부진(48.3%)을 가장 많이 꼽았다.

실제 올해 세계경제는 미국 등 선진국 중심으로 살아나겠지만 신흥국에는 경기 회복의 온기가 전해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돼 신흥국 수출 비중이 큰 한국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 따르면 2006∼2013년 우리나라의 수출이 증가한 상위 10개국은 ▲베트남(437%) ▲브라질(216%) ▲사우디아라비아(196%) ▲인도네시아(137%) ▲싱가포르(134%)를 비롯해 필리핀·러시아·중국·인도·호주 등 신흥국이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신흥국 성장률을 지난해 5.9%에서 올해 5.0%로 0.9%포인트 낮춰 잡았다. 주력 수출시장인 신흥국의 경제성장이 둔화돼 한국 경제성장에 한계가 올 수 있다는 것이다.

◆ 장사 안되면 직원 월급 메우려고 대출…빚만 떠안은 채 폐업

한편, 최근 50대 이후 명예퇴직자들이 대거 자영업에 뛰어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성공하기 어렵다’, ‘잘못하다가는 빚만 짊어진다’ 등 이런 걱정에도 불구하고 자영업에 뛰어드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실제 자영업자의 1년 후 생존율이 60%대에 불과하고 창업 5년 뒤 70%는 폐업한다는 통계가 있지만, 퇴직 후 자영업 외에 뚜렷한 대안이 없는 실정이다. 이런 현실을 반영하듯 한 때 감소세를 보이던 자영업자 숫자가 다시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11월 자영업자는 567만6000명으로 1년 전에 비해 9000명이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는데, 폐업하는 자영업자가 한 달에 평균 6만개가 넘는 통계를 감안할 경우 전국적으로 새로 창업한 자영업자가 대략 7만명쯤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렇게 자영업자가 늘어난 것이 명예퇴직과 관련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해 12월 한 통계자료를 보면 1인 자영업자는 409만6000명으로 1년 전에 비해 7만4000명(1.8%)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종업원을 둔 자영업자는 8만3000명(5.5%)이 늘어나 158만명으로 집계됐다. 즉, 그래도 어느 정도 돈을 가지고 자영업에 뛰어든 사람이 늘어났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바로 명예퇴직으로 어느 정도 목돈을 손에 쥔 사람들이 창업을 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들은 대부분 50대 후반이고 그동안 일했던 분야의 경험을 살리지 못하고 자영업에 뛰어든 사례가 많았다. 한 경제연구소 전문위원은 “50대 후반 자영업자가 많이 증가하는 추세”라며 “은퇴 후 그간 일했던 분야의 경험을 살리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자영업에 뛰어드는 사례가 적지 않은 것 같다”고 전했다.

◆ '노인이 불행해지는 나라' 韓 노인복지 50위…中보다 뒤져

우리나라의 ‘노인 가난’이 지난 2013년에 이어 2014년도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조사됐다. 60세 이상 노인의 47%는 총수입이 국가 중간소득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국제노인인권단체 헬프에이지 인터내셔널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2014년 세계 노인복지지표’를 발표했다. 이번 조사는 세계 96개국의 노인복지 수준을 소득·건강·역량·우호적 환경 등 4개 영역 13개 지표로 측정했다.

우리나라는 100점 만점에 50.4점을 받아 전체 순위 50위에 그쳤다. 2013년 처음 발표한 순위에서 91개국 가운데 67위였던 것과 비교하면 소폭 상승했다. 그러나 ▲일본(9위) ▲태국(36위) ▲스리랑카(43위) ▲필리핀(44위) ▲베트남(45위) ▲중국(48위) ▲카자흐스탄(49위) 등도 우리나라보다 순위가 높았다. 1위는 노르웨이(93.4점)가 차지했으며, 스웨덴과 스위스·캐나다·독일 등 유럽 주요 선진국이 뒤를 이었다. 4개 영역 중 노인 소득 관련 부분은 80위로 가장 취약했다. 노인 빈곤율은 47.2%에 달했으며 노인의 상대적 복지수준도 62점으로 낮게 나타났다. 연금을 받는 노인 비율 평가에서는 77.6점을 기록했다. 그나마 연금 수급률 자료가 개정되면서 2013년 90위에서 소폭 상승한 것이다. 2014년 7월부터 지급된 기초연금은 지표에 반영되지 않았다.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 가운데 노인이 차지하는 비중도 2010년 26.8%에서 29.9%로 계속 늘고 있다.

건강상태 영역의 경우 노인의 정신적 복지와 관련한 자료를 새롭게 반영하면서 2013년 8위에서 올해 42위로 대폭 하락했다. 사회적인 연결이나 신체적 안정, 시민의 자유 등을 측정한 우호적 환경 분야에서도 54위로 중하위권에 머물렀다. 2013년 노인자살률은 인구 10만명당 64명을 기록하기도 했다. 인권단체 관계자는 “한국은 상당한 수준의 경제성장을 이룩했지만 기대에 비해 낮은 소득보장 순위에 머물렀다”며 “노인 빈곤의 심각성과 해결방법, 연금 수준의 적합성과 보편성·보장범위 등에 대해 국가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